정양국 서울성모병원 정형외과 교수
다학제 진료로 40대 남성의 골반에 있던 악성 종양을 제거한 수술을 ‘내 생애 최고의 수술’로 꼽은 정양국 서울성모병원 교수(56)가 지난해 12월 30일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2010년 6월 정양국 서울성모병원 정형외과 교수(56)를 찾아온 중년 여성은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이렇게 말했다. 환자인 이모 씨(47)의 컴퓨터단층촬영(CT) 영상과 X선 촬영 영상을 보던 정 교수는 고민에 잠겼다. 뼈나 근육에 생긴 종양 제거의 대가인 정 교수조차도 혼자서는 섣불리 수술에 나설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 씨의 상태는 심각했다. 이 씨는 같은 해 2월 한 목욕탕에서 넘어져 부산의 한 대학병원에 실려 갔다가 오른쪽 골반뼈에 ‘평활근육종’이 생겼다는 진단을 받고 입원 중이었다. 이 씨가 진단받은 평활근육종은 근육에 종양이 생기는 희귀병이다. 이 씨의 오른쪽 골반뼈 대부분이 이미 종양으로 뒤덮인 상태였다. 이 상태로 놔두면 곳곳에 암이 퍼져 이 씨는 사망할 수도 있었다. 정 교수가 30여 년의 의사 생활 동안 마주한 최악의 종양 환자였다.
○ 다학제 수술로 결정
이 씨를 위해 모인 학과는 총 6곳이었다. 정형외과 소속인 정 교수를 비롯해 종양내과, 외과, 영상의학과, 마취과, 방사선종양학과가 한자리에 모였다. 문제는 간단하지 않았다. 종양을 최대한 제거하면서도 다리가 움직이게 하고 대소변을 가능하게 하는 신경은 최대한 살려야 했기 때문이다. 또한 오른쪽 골반뼈 대부분이 종양으로 뒤덮인 상태라 종양을 제거한 후 골반뼈를 대체할 만한 것도 찾아야 했다.
3차례의 협의 끝에 이 씨를 위해 다학제 팀이 내린 결론은 ‘광범위 절제술’이었다. 종양을 최대한 제거하는 방향으로 의견을 모은 것이다. 또 다학제 팀은 종양을 제거한 자리에는 별다른 대체재를 넣지 않기로 결정했다. 다른 사람의 뼈를 넣거나 금속으로 된 뼈를 넣는 경우에 수술 과정에서 합병증이 올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대신 골반뼈 주변의 근육을 최대한 활용해 체형과 기능을 유지하기로 했다.
○ 16시간 35분 험난한 수술
수술은 예고됐던 것만큼 험난했다. 다학제팀에 참여한 3명의 의사가 번갈아 가며 메스를 잡은 수술은 오전 10시에 시작해 다음 날 오전 2시 35분에 끝났다. 총 16시간 35분이 걸렸던 것. 대수술답게 혈액 역시 엄청난 양이 필요했다. 몸무게가 70kg인 이 씨의 혈액량이 5L가량인데, 수술에 사용된 혈액은 20L에 달했다.
다행히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이 씨는 현재 무사히 회복돼 장거리를 걷거나 일상생활을 하는 데 지장이 없다. 회사 생활도 무리 없이 하고 있다. 다만 종양을 제거하면서 오른쪽 골반뼈가 상당 부분 사라졌기 때문에 오른쪽 다리가 왼쪽 다리에 비해 10cm가량 짧았다. 정 교수는 이 씨에게 오른쪽 발에 굽이 높은 신발을 신도록 처방했다.
○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해’
정 교수는 “다학제 진료가 이 씨를 살린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복합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는 질병은 아무리 유능한 의사라도 혼자서 해결하기는 힘들다”며 “악성 종양을 제거하는 데는 다양한 팀이 참여하는 다학제 진료가 최선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다학제 진료가 성공하기 위한 요인은 무엇일까. 정 교수는 ‘이해’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여러 명의 의사가 참여해 논의하고, 수술하는 다학제 진료의 특성상 참여한 의사들이 서로 이해하고 배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 성과만 챙기려고 하면 피해를 보는 것은 결국 환자라는 얘기다.
▼평활근육종은 어떤 질환?▼
평활근육종은 주로 내장을 구성하는 평활근이라는 근육에 악성 종양이 생기는 질환이다. 학계에서는 우리 몸의 유전자가 변이하는 과정에서 이 변이된 유전자를 처리해야 할 면역체계가 스트레스나 술, 담배 등으로 인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해 평활근육종이 생기는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스트레스 관리와 올바른 생활 습관이 예방의 최선이다.
평활근육종은 자궁이나 소화기 계통, 혈관 벽 등에 생기는 경우가 많다. 남성보다는 여성이 더 많이 걸리고 연령별로는 30대 이후가 환자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평활근육종이 발생하면 복부에 불편함이 느껴지고 체중이 감소하는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복부 깊숙한 곳에서 평활근육종이 생겼을 때는 별다른 증상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이미 병이 진행된 상태에서 발견되는 경우가 많아 수술이 어렵다. 다만 팔, 다리에 평활근육종이 생기는 경우에는 수술이 상대적으로 수월하다.
황성호 기자 hsh033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