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원 사회부 차장
정 전 감독은 출국 전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박 전 대표의 비인간적 처우를 견디다 못한 직원들이 이를 고발했는데 오히려 피해자가 경찰에 고소당해 조사를 받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졌다는 취지였다. “여태껏 살아왔던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는 지적에는 한국 사회에 대한 불편한 감정마저 엿보인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서울시향 사태 직후인 지난해 1월부터 이 사건을 취재해 온 기자로서 정 전 감독의 이 같은 발언에 동의하기 어렵다. 1년간 서울시향 직원 등 사건 관계자들과 경찰조사 과정을 지켜보면서 뭔가 석연치 않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특히 박 전 대표의 ‘성추행’ 의혹이 그랬다. 여성 대표의 남성 직원 성추행은 박 전 대표를 한 방에 훅 보낸 사안이었다. 하지만 피해자로 알려진 직원 곽모 씨는 오히려 술자리에 동석한 사람들에게 성추행 목격을 증언해 달라고 회유한 사실이 드러나 피의자 신분으로 경찰조사를 받고 있다. 막말 폭언에 시달렸다는 직원 10여 명 역시 경찰조사에서 사실관계가 애매한 ‘전언의 전언’을 옮겨가며 진술을 번복했다.
정 전 감독은 “구 씨가 직원들의 피해 구제를 돕기 위해 조언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의혹을 해소하기에는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진실게임으로 치닫고 있는 서울시향 사태의 결론은 결국 경찰수사 결과에 달려 있다. 공정한 결과가 나오려면 정 전 감독과 부인 구 씨가 스스로 나서서 납득할 만한 해명을 해야 한다. 만약 서울시향 사태가 정 전 감독과 관계가 틀어진 박 전 대표를 쫓아내기 위한 사전 각본에 따른 것이었다면, 이야말로 정 전 감독의 말마따나 ‘문명사회에서 절대 용인할 수 없는 일’이다.
김창원 사회부 차장 chang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