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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시선]건강상태와 법원의 양형 판단 기준, 과연 적절한가

입력 | 2016-01-04 03:00:00


이주원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前 광주지법 부장판사

최근 CJ 이재현 회장의 파기환송심 선고가 나온 뒤 “건강 상태는 양형의 문제가 아닌 형 집행의 문제”라는 기사를 다수 접했다. 법원이 피고인의 건강 상태를 형 집행의 문제로 다룬 것은 비단 이번만은 아니다. 과거 태광그룹 사건에서도 이선애 씨 모자(母子)에 대해 유사한 이유로 동시 구속했다가 형 집행정지 중에 이 씨가 사망하는 일이 생기면서 사법 치사 논란까지 불거진 적이 있었다. 피고인의 건강 상태를 양형의 문제가 아니라 단지 형 집행의 문제로 보는 것은 과연 맞는 판단인가.

양형은 구체적인 사건에 적용될 형벌의 종류와 양, 그 선고와 집행 여부를 결정하는 것을 말한다. 법관의 양형에서는 통일성 있는 취급도 중요하지만, 개별 사례에 맞는 적정성과 개별화라는 가치도 대단히 중요하다. 개별 사례에 맞는 결론을 찾으려면 개별 사안의 특수성도 고려해야 하고, 피고인에 대한 전인격적 평가를 통해 피고인에게 구체적으로 타당한 형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형법 제51조에는 ‘형을 정함에 있어서 범인의 연령, 성행, 지능과 환경 등 피고인의 전인격적 특성을 참작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대법원 양형기준에도 피고인의 고령, 매우 좋지 않은 건강 상태 등을 모두 집행유예 참작 사유로 명시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 일부 사건에서 실제로 아프지 않은데도 마치 아픈 것처럼 주장하여 국민의 비난을 받은 사례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사례들은 법원을 오도하려는 책략이었거나 피고인의 건강 상태에 대해 법원이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 데 과오가 있는 것이지, 피고인의 건강을 양형에 참작한 그 자체에 과오가 있는 것은 아니다. 순수한 소송책략이 아닌 진정한 의미에서 육체적·심리적으로 좋지 않은 건강 상태는 충분히 형벌 완화 사유가 될 수 있다.

법원의 양형에 대해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비단 피고인의 건강 문제만은 아니다. 2009년부터 마련된 대법원 양형기준은 법률상 권고적 효력밖에 없음에도 이를 지키는 비율(준수율)이 90%를 넘고, 형사합의부의 준수율은 95%에 이른다.

하지만 한국보다 일찍 양형기준을 도입한 미국의 경우, 그 준수율이 60%를 넘지 않는다고 한다. 양형기준을 법원이 반드시 지키도록 기속력을 부여하는 연방양형개혁법 조항을 위헌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것과 비교하면, 한국 법원에서는 양형기준에 사실상 기속되고 그 기속이 가속화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마치 양형기준이 법관에게 ‘안전한 도피처’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게 한다.

양형 판단의 본질은 개별 사례에 타당한 결론을 구하는 데 있는 것이지, 양형기준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라는 것이 아니다. 양형기준의 제정 목적 또한 과도한 양형 격차의 부당함을 개선하자는 것이지, 구체적 타당성까지 외면하라는 것은 아니다. 법원 밖에서도 양형기준의 준수·이탈에만 초점을 맞추어 법원을 비판하는 태도 역시 지양될 필요가 있다.

이주원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前 광주지법 부장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