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를 아십니까]<上>현실주의에 물든 초중생
같은 학교 6학년 김지민 양(13)은 “넓은 아파트에 사는 애들은 친구들도 잘 초대하고, 자신감도 넘치는데 아파트 평수가 작은 애들은 이야기도 잘 안 한다”고 거들었다. 그는 “친척들의 직업을 조사해 발표하는 과제가 있었는데 수업이 끝나고도 한동안 화제가 됐다”고 덧붙였다.
○ “너네 집 몇 평인데?”
본보와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만 10∼15세의 수도권 아동청소년 512명(초등학교 4∼6학년 260명, 중학생 252명)을 대상으로 조사해보니 ‘나와 집안 형편이 비슷한 친구들과 사귄다’고 응답한 비율이 67.6%에 달했다. 친구의 부러운 점으로 응답자 셋 중 둘은 ‘똑똑한 머리’(37.7%)나 ‘외모’(30.3%)를 꼽았지만 ‘부모의 재력이 부럽다’는 응답도 21.5%나 됐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아이들은 인간관계를 돈으로 따지는 어른들의 행동을 자주 목격하고 이를 닮아간다”고 말했다. 부모가 왜곡된 가치관을 1차로 걸러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부모마저 이웃의 집 평수나 남의 연봉에 대해 아무렇지 않게 말하면 아이들에게는 ‘돈은 굉장히 중요한 기준’이라는 가치관이 자리 잡는다는 것이다.
○ 웃자란 현실감…“돈 없이는 꿈도 못 꿔”
어린 시절부터 현실감각이 지나치게 발달하는 것도 ‘어른이’들의 특징이다. ‘돈이 없어도 나의 꿈을 이룰 수 있다’는 데 공감한 응답자는 49.2%였다. 유미숙 숙명여대 아동복지학과 교수는 “과거 이 나이의 어린이들은 소원을 말해보라고 하면 공주, 통일, 장난감 등을 들었는데 요즘은 ‘부자’라고 하는 아이들이 가장 많다”며 “어른들의 가치관에 아이들이 자기도 모르게 젖어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설문조사에서 ‘평생 먹고살 수 있는 돈이 있다면 나는 일을 안 하겠다’라고 한 응답은 41.4%에 이르렀다.
○ “용돈 모아 커플링 선물할 거예요”
‘빼빼로 데이’(11월 11일)를 맞은 초등학교 풍경도 바뀌었다. 좋아하는 이성 친구에게 학교 앞 문구점이나 편의점에서 파는 과자를 건넸다가는 면박을 당하기 일쑤. 특별한 선물을 위해 요즘 아이들은 ‘한정판 빼빼로’를 파는 대형 마켓을 찾는다. 정시우 군(13)은 “다른 친구들보다 더 특별한 선물을 하기 위해 먼 백화점까지 가기도 한다”고 말했다.
영화나 드라마 속 연인을 위한 이벤트 장면을 재연하는 친구들도 있다. 김지원 양은 “한 친구는 사귄 지 100일째에 남자 친구가 영화 ‘러브 액츄얼리’의 한 장면처럼 스케치북에 사랑한다는 글자를 적어 이벤트를 해줬다며 자랑했다”며 “이벤트는 가벼운 뽀뽀로 마무리했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김재형 monami@donga.com·노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