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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배의 神品名詩]무영탑 無影塔

입력 | 2016-01-06 03:00:00


불국사 삼층석탑(석가탑)

무영탑 無影塔 ―김종해(1941∼ )

불국사 대웅전 뜨락에 서서
천년 세월
풍우에 깎인 돌과 함께
탑을 떠나지 않는
백제의 석공 아사달이여
돌에 새겨진 연꽃은 지지 않고
사시사철 피어 있다
연못에 몸을 던진 아사녀의 혼이
지금도 연꽃으로 피어 있다
불국사 대웅전 뜨락에 서서
석가여래께서 나직이 설법하시느니
그 말씀 목판 다라니경陀羅尼經에 새겨
다음 세상 내세來世의 천년을 건너간다
잠 오지 않는 이국의 밤
서라벌의 달빛은
아사달의 손가락 마디마다 맺혀
아리따운 아사녀의 혼불을 밝히고
돌 하나하나마다 눈물인 듯
무영탑은 소리 없이 제 그림자마저 지우는구나.



새해 새 아침이 밝았다. 석굴암대불을 보듬고 장엄한 동해 일출맞이를 하는 토함산 불국사 한 마당에 서 있는 불국사 삼층석탑(국보 21호). 이 탑은 1200여 년토록 이 땅의 지아비 아사달과 지어미 아사녀의 아름답고 슬픈 사랑의 향불을 올리며 온 백성의 홍복과 평안을 기원하고 있다.

‘석가탑’으로 불리는 이 탑은 대웅전 앞 서쪽에서 동쪽의 다보탑과 짝을 이루고 있는데 무영탑으로 더 이름이 난 것은 백제의 명석공 아사달과 그 아내 아사녀의 지고지순한 사랑의 애사가 빛과 그림자로 어려 있기 때문이다. 아사달이 신라의 불국사 창건에 뽑혀 와서 다보탑을 먼저 세우고 석가탑을 짓느라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려 떨어져 있던 아사녀가 산길 물길 넘어 찾아오게 된다. 그러나 불사의 정결함을 내세우는 주지의 뜻에 따라 영지(影池)에 탑신이 비칠 때까지 기다리다 그리움에 못 견뎌 못에 몸을 던진다. 석가탑을 완공한 아사달이 아사녀를 찾아갔으나 이미 먼저 세상을 떠났음을 알고 울부짖다가 마침내 못에 뛰어든다.

1939년 현진건은 이 설화를 소재로 동아일보에 소설 ‘무영탑’을 연재했다. 한 명장의 불멸의 예술혼과 순열한 사랑에 독자들은 하루하루를 가슴 조여야 했다.

1966년 탑을 수리하다가 사리탑, 유리사리병, 구리거울 등과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물 ‘무구정광대다라니경’(국보 126호)이 나와 저 신라 불교 문화예술의 금자탑이 된 것이다. 하짓날 정오가 되면 탑의 그림자가 없어진다고 과학적으로 확인된 무영탑. 이 무영탑에 시인은 ‘서라벌의 달빛은/아사달의 손가락 마디마다 맺혀/아리따운 아사녀의 혼불을 밝히고/돌 하나하나마다 눈물인 듯/무영탑은 소리 없이 제 그림자마저 지우는구나’라고 길이 새긴다.

이근배 시인·신성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