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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옷 다른 가격 ‘택갈이’

입력 | 2016-01-06 14:01:46

서울 동대문시장(위)과 백화점에서 구매한 털조끼. 외관상 같은 상품이지만 백화점 매매가는 7만8000원, 동대문시장 매매가는 1만6000원이었다. 홍중식 기자

서울 동대문시장 지하 1층. 의류업계 관계자들은 “소매업자들이 동대문시장에서 옷을 대량 구매해 상표 및 가격표를 바꾸는 ‘택갈이’를 한다”고 말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없음. 지호영 기자


다음과 같은 상황을 가정해보자. 예쁜 옷을 발견해 구매했는데 며칠 후 똑같은 상품이 다른 가게에서 훨씬 저렴하게 팔리는 것을 보면 어떨까. 소비자는 속은 기분이 들겠지만 쇼핑을 하다 보면 종종 발생하는 일이다. 같은 의류에 상표나 가격표가 다르게 붙는 것을 업계에서는 일명 ‘택(Tag·태그)갈이’라고 한다. ‘택갈이 제품’과 ‘카피(복제)품’은 다르다. ‘택갈이’는 동일한 옷에 브랜드 라벨과 가격을 다르게 책정하는 것이고, 복제품은 기존에 나온 디자인을 비슷하게 베껴 만든 유사품을 말한다. 의류업계에서는 ‘택갈이’와 카피품을 각각 ‘완전한 동일 제품’과 ‘모양만 비슷한 제품’으로 구분한다.
‘택갈이’는 종종 언론에 노출된다. 2015년 10월에는 글로벌 대기업 브랜드 ‘유니클로’가 ‘택갈이’ 논란을 일으켰다. 할인 시즌인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 시기에 판 제품이 문제였다. 2014년 제조한 점퍼 가격표에 4만4900원이라고 쓰인 스티커가 붙어 있었는데, 스티커를 떼어 보니 원래 가격이 5000원 싼 3만9900원이었던 것. 소비자들은 “어떻게 할인 시즌에 원래 가격보다 비싸게 택갈이를 할 수 있느냐”며 공분했다. 당시 유니클로는 “해당 상품은 블랙프라이데이 할인행사와는 무관하며, 2015년 조정(인상)된 가격이 반영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택갈이’에 대한 소비자들의 원성은 쉽게 그치지 않았다.

‘카피’ 아닌 원조에 가격표만 바꿔의류업계 ‘택갈이’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디자이너들 사이에는 “하나의 기업이 디자인, 제조, 유통, 판매를 책임지는 SPA 브랜드 및 중저가 패션 라인은 동대문시장에서 훨씬 싼값에 구매할 수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실제로 그럴까. 확인하기 위해 백화점 내 중저가 패션 브랜드 제품을 조사한 뒤 새벽 6시 동대문시장으로 갔다. 젊은 층을 겨냥한 의류상가가 밀집한 동대문 청평화시장. 이곳 지하 1층에서 한 백화점 입점 브랜드 옷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중저가 패션업체인 ‘O’ 브랜드의 털조끼와 똑같은 제품 6~7종이 있었다. 매장 주인은 “카피품이 아닌 원조품 택갈이다. 소매업체에서 대량으로 구매해간다”고 했지만 어느 브랜드에 납품하고 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해당 제품은 크기와 디자인, 안감까지 백화점 제품과 같았고 상표만 없었다. 백화점에서 파는 제품은 7만8000원, 동대문시장 제품은 1만6000원으로 6만2000원이나 차이가 났다. 백화점 매장 관계자는 “우리 제품이 동대문시장에 있다는 건 처음 알았다. 제조공장에서 몰래 동대문시장에 납품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의류업계에 따르면 ‘택갈이’는 여러 형태로 이뤄진다. 동대문 도매시장에서 싸게 파는 제품을 소매업체가 대량 구매해 브랜드 상표를 붙이고 비싸게 파는 경우다. 기자가 찾아낸 사례처럼 하나의 의류공장이 동일한 제품을 여러 브랜드에 납품하는 경우도 있다. 이때 특정 브랜드가 “우리에게만 납품하기로 계약해놓고 왜 경쟁업체에도 납품하느냐”며 소송을 하기도 한다. 또는 유니클로처럼 자사 제품의 가격표를 바꿔서 파는 경우다.
의류 디자이너 경력 9년 차인 최모(32) 씨는 “의류업계에서 자사 제품 택갈이는 양반인 셈이고, 유명 중저가 브랜드에서도 타사 제품 택갈이를 빈번하게 하고 있다”며 “특히 가격이 매우 저렴한데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 라벨이 붙었으면 중국산 제품을 택갈이 했을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의류업계의 ‘택갈이’ 관행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패션업계 과당경쟁이 일차적 원인이다. 최씨는 “날이 갈수록 유행 주기가 짧아진다. 패션 브랜드는 생존을 위해 계속 새로운 제품을 찍어내야 한다. 하지만 시간과 자금이 부족해 새로운 디자인 제품을 생산해낼 여유가 없으면 결국 타사 제품을 가져다 택갈이를 한다”며 “브랜드끼리 서로 택갈이를 하다 보니 업계에서도 웬만큼은 눈감아준다”고 설명했다.

통제, 감시 기구 따로 없어‘택갈이’에 대한 법적 제재가 부족한 점도 있다. 이재길 한국의류산업협회 법무팀장은 “윤리적 측면에서 보면 택갈이는 부정 경쟁 행위지만, 단순한 모양이나 패턴을 본뜬 것만으로는 법적 제재가 쉽지 않다. 워낙 비슷한 디자인이 많아서 브랜드나 시장 중 어느 한쪽이 다른 쪽 제품을 도용했다는 것을 밝히기가 어렵다. 의류 택갈이를 통제하는 공공기관도 따로 없어 시장이 전혀 감시되지 않는 상태”라고 지적했다.
‘택갈이’를 무조건 나쁘게만 볼 수는 없다는 지적도 있다. 이재길 팀장은 “일부 브랜드는 제품을 택갈이 할 때 동대문시장에서 하지 않는 공정을 추가한다. 이염 및 열 테스트, 꼼꼼한 마감 등이다. 소비자가 당장 확인할 수 없는 제품의 품질 차이가 여기서 발생한다. 가격이 비싼 데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설명했다.
동대문시장에서 수년간 일한 경험이 있는 이모(34) 씨도 “택갈이 제품 중 아웃도어 의류는 동대문시장 제품과 브랜드 제품 간 차이가 큰 편이다. 기능성이 중시되기 때문에 브랜드 제품의 경우 본사에서 품질 개선 과정을 몇 번 더 거쳐 시장에 나온다”고 귀띔했다.  
그렇다고 해도 택갈이를 전면 허용하자는 것은 아니다. 녹색소비자연대 관계자는 “동일한 새 제품이 가격 차가 크게 벌어진다면 소비자들의 혼란은 계속될 것”이라며 “불법유통 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감시체제가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지현 객원기자 bomb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