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 일하다 보면 적극적으로 내 의견을 주장하려다가 무례한 모습으로 비춰질까 두려워 멈칫할 때가 있다. 상대방과 학연이나 지연으로 이어지는지 등 사적 영역에서의 친밀도를 고려해서 말을 가려 하게 된다. 이런 습관은 특히 해외기업과 소통할 때 문제가 된다. 서구에서는 직장에서 공과 사를 구분하지 않거나 자기 의견을 적극적으로 제시하지 않는 사람은 무능력하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흔히 우리는 이런 예의에 대한 강박, 수동적이고 순응적인 기업문화가 조화나 화합을 중시하는 한국적 특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연구 결과가 최근 발표됐다.
미국 캘리포니아대와 오스트리아의 빈대학교 공동 연구진은 최근 유럽에 본사를 두고 세계 66개국에서 소비재산업을 하는 한 글로벌 대기업을 조사했다. 2006년부터 2008년까지 이 회사 직원들이 제시한 9765건의 생산혁신 제안을 분석해서 이 안들이 어떻게 관리자들에게 전달됐는지, 최종적으로 채택됐는지를 확인했다.
이는 한국뿐 아니라 어떤 국가의 기업이라도 조직구조가 지나치게 위계적이고 복잡하다면 의사소통에 문제가 생긴다는 것을 보여준다. 새로운 아이디어나 보고 내용에 공을 들여 봐야 불필요한 일거리, 혹은 평가의 대상으로 치부된다면 누구도 나서서 적극적이고 창의적으로 일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조직원 개인 입장에서는 차라리 업무 이외의 관계 형성에 공을 들이는 것이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한국 기업의 수동적, 순응적인 문화는 한국인들의 고유정서 때문이 아니라 단지 조직구조의 문제일 수도 있다. 직원들의 글로벌 소통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먼저 내부 조직체계부터 소통이 잘될 수 있도록 개선해야 한다.
류주한 한양대 국제학부 교수 jhryoo@ha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