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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역할론’에 기댄 정부… 北과 대화 낙관하다 뒤통수 맞아

입력 | 2016-01-07 03:00:00

[北 4차 핵실험]당혹스러운 정부




심각한 美대사 북한이 6일 핵실험을 강행한 뒤 윤병세 외교부 장관(오른쪽)이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가운데)와 커티스 스캐퍼로티 주한미군사령관을 만나 대책을 협의하고 있다. 한미 양국은 북한의 도발에 대응하기 위해 한미 공조를 강화하기로 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북한도 8·25 합의 이행 의지를 밝히고 있는 만큼 민간 통로 확대와 이산가족 문제 해결 등 남북관계 정상화에 힘써 주길 바란다.”

박근혜 대통령이 5일 국무회의에서 남북관계에 대해 한 발언이다. “한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고 주문하기는 했지만 북핵 실험이 임박했다는 위기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외교안보 부처에서도 북한의 핵실험에 대한 경보음은 없었다. ‘소형화된 수소폭탄’의 성공 여부를 떠나 정부가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 북한 ‘대화 제스처’에 뒤통수

통일부는 5일까지만 해도 신년 대통령 업무보고의 기조를 큰 틀에서 ‘남북관계 정상화를 통해 비핵화를 견인하는 선순환, 남북교류협력의 진전과 심화’ 등으로 잡았다. 하지만 6일 북한의 핵실험 소식을 접한 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업무보고 기조를 바꿔야 할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정부가 북한의 핵실험에 낙관적 태도를 가진 데에는 핵 개발에 대한 언급 없이 “남북 대화와 관계 개선을 위해 앞으로도 적극 노력하겠다”고 밝힌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의 신년사도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정보당국은 북한의 수소폭탄 개발 언급을 무시했다. 지난해 12월 10일 노동신문은 김정은이 “우리 조국은 수소탄(수소폭탄)의 거대한 폭음을 울릴 수 있는 강대한 핵보유국”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정보당국은 “북한이 수소폭탄을 개발했다는 정보는 갖고 있지 않다”며 무게를 두지 않았다.

국방부와 국가정보원은 북한의 핵실험이 임박했다는 징후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최소 한 달 전 핵실험을 예측할수 있다고 장담하던 군도 완전히 농락당한 셈이 됐다. 외교부는 북한이 핵실험을 단행한 뒤 특별 중대보도를 예고할 때까지 1시간이 지나도록 핵실험 여부도 단정하지 못했다.

○ 대응 수단도 마땅치 않아…대북 확성기는?

북한은 철저하게 핵실험 징후가 사전에 포착되지 않도록 감췄다. 주호영 국회 정보위원장은 이날 국정원 보고를 받은 뒤 “북한이 외부에 노출 안 되도록 하기 위해 버튼만 누르면 될 정도로 미리 준비한 것 같다”며 “미국과 중국에 통보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군 고위 관계자는 “한미 정보당국이 며칠 전부터 첩보위성 등으로 풍계리 일대 핵실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추적하고 있었다”면서 “하지만 핵실험이 지하에서 이뤄지는 거라 예측할 수 없는 측면이 크다”고 해명했다. 2번 갱도에서 지하로 연결된 북동쪽 2km 부근에서 실험을 했기 때문에 전혀 파악이 안 됐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이날 “반드시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도록 하겠다”고 강조했지만 국제사회의 제재에 동참하는 것 외에 북한에 대응할 방법은 마땅치 않다. 일각에서는 지난해 8·25 합의 당시 “비정상적인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 한”이라는 조건으로 확성기 방송을 중단한 만큼 핵실험으로 방송 재개의 여건이 마련됐다는 의견이 나온다. 다만 북한이 합의를 깼는지에 대한 이견이 있을 수 있고, 확성기 방송 재개로 대응할 사안은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우리가 직접 피해를 본 게 아니니까 대응하기가 쉽지 않다”며 “확성기 방송 재개도 검토할 수 있지만 섣불리 이야기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 중국을 통한 북한 컨트롤 한계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근간으로 한다. 그러나 이날 북한이 다시 핵실험을 강행하면서 남은 2년의 임기 동안 남북 화해 분위기를 조성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중국 경사론(傾斜論)’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중국과의 외교에 심혈을 기울여 왔다. 북핵 해결을 위한 중국의 역할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은 중국에 사전 통보조차 없이 핵실험을 강행함으로써 중국의 통제에서 벗어났음을 선언했다. 천영우 전 대통령외교안보수석비서관은 “그래도 중국의 (북한에 대한) 태도는 바뀌지 않을 것”이라며 “중국이 지금까지 하던 ‘립 서비스’ 이상의 것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 대중 외교의 파탄”이라고 지적했다.

당분간 대북 강경론이 힘을 얻을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나온다. 대북정책의 목표를 북핵 포기에서 북한 정권 교체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윤덕민 국립외교원장은 “북한이 ‘핵실험을 하는 게 패착’이라고 생각하도록 강력한 핵 해결의 모멘텀을 만들어야 한다”며 “국제사회와 함께 금융 제재 등 알맹이가 있는 제재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장택동 will71@donga.com·윤완준·우경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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