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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기자의 문학뜨락]“나이는 숫자에 불과” 반백의 신인들, 기백은 청춘

입력 | 2016-01-07 03:00:00


소설가 이유 씨는 41세의 나이에 등단했다. 그는 등단 5년 만인 지난해 장편 ‘소각의 여왕’으로 문학동네소설상을 수상했다. 이 씨는 10, 20대 때 문학에 대한 꿈을 갖고 있었지만 기존 문인들처럼 습작을 하진 않았다. 그는 취직이 잘된다는 권유에 수학과에 들어갔고 수학 교재를 만드는 출판사에서 오래 일했다. 그는 생계와 육아 문제가 얼추 해결되자 작가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문예창작과 대학원에서 비슷한 상황의 또래 친구들을 적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고 그는 전했다.

소설 창작은 장시간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작업이어서 어렸을 때부터 몸에 익지 않으면 나이 들어 새로 시작하기엔 적합하지 않은 일로 여겨졌다. 그런데 이제는 편견이 될 것 같다.

올해 신춘문예 당선자들을 살펴보니 동아일보 단편소설 부문의 이수경 씨(50)를 비롯해 42세, 57세 신인들이 소설가로 등단했다. 지난해 12월 발간된 다섯 명 작가의 작품을 모은 소설집 ‘선택’의 저자들도 대부분 늦깎이로 소설가가 된 이들이다. 양진채 씨는 42세, 이경희 씨와 정태언 씨는 47세, 허택 씨는 56세에 등단했다. 문단 선배들의 이력과 비교하면 작가로선 늦게 출발하는 셈이다.

늦깎이 신인들은 대개 경제적 기반을 닦아놓은 뒤 등단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수경 씨는 오랫동안 학원에서 영어 강사를 하면서 아이들을 가르쳐 왔다. 올해 신춘문예 당선자인 57세 신인 조선수 씨는 수년 전까지만 해도 약사로 일했다. 허택 씨는 치과의사다.

“문지문화원 ‘사이’에서 소설을 강의하는데 나이 들고 직업 있는 수강생들이 꽤 있어요.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 의사, 교사, 심리상담사 같은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소설가 강영숙 씨의 얘기다.

소설 시장의 쇠락으로 소설만 써서는 생계를 유지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소설가가 되고 싶은 열망은 줄어들지 않는다. 그래서 안정된 생활 기반을 갖춰 놓은 뒤 작가의 꿈을 키우는 것이다. 이들 중년의 문학 지망생들은 취미로 글을 쓰는 게 아니어서 절실하다. 신춘문예 최종심에 오를 만큼 글쓰기 실력도 좋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일하다 마흔 넘어 등단한 정유정 씨는 ‘7년의 밤’ ‘28’ 등의 베스트셀러를 통해 한국 문학에 활력을 주고 있다.

젊은 신인과 나이 든 신인을 두루 접해온 편집자 A 씨는 나이 든 신인들이 편집자와 더 많이 교류하고 싶어 하는 쪽이라고 귀띔했다. 문장이나 시선이 예스럽지 않을까 고민하거나 편집자의 의견을 많이 구한다는 것이다. 바깥의 얘기를 청취하고 작품을 새롭게 바꾸려는 노력도 크다. 경험과 연륜에 이런 의지까지 더해진다면 나이 든 신인들이 한국 문학에 주는 자극은 만만치 않을 것 같다. 나이는 역시 숫자에 불과하지 않은가. 그들의 활약이 기대된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