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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재 기자의 무비홀릭]병신년, 금연과 다이어트 돕는 영화들

입력 | 2016-01-07 03:00:00


영화 ‘콘스탄틴’의 한 장면.

병신년(丙申年)이 벌써 일주일 가까이 흘렀다. 새해에도 숱한 결심을 해보지만 작심삼일인 경우가 많다. 새해 첫 ‘무비홀릭’은 신년 결심을 이뤄내는 데 도움이 되는 영화들을 소개해 드릴까 한다. 일명 ‘작심삼일 타파 도우미’ 영화들인 셈.

먼저 금연. 전자담배에까지 기대어 보지만 매번 금연에 실패하는 분들에겐 코미디와 공포가 짬뽕된 이상한 영화 ‘캣츠 아이’를 추천한다. 이 옴니버스 영화에서 ‘금연주식회사’란 첫 번째 에피소드에 주목하시길. 세계 최고 골초인 남자 주인공은 고민 끝에 이 회사를 찾은 뒤 단칼에 금연하게 된다. 회사가 골초들을 금연하게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금연 약속을 위반할 때마다 손가락 하나씩을 절단하면서 전기고문을 선물해주는 것. 금연, 참 쉽죠잉?

엑소시즘(퇴마)을 다룬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콘스탄틴’도 금연엔 ‘직방’이다. 악마들을 처치하기 전후에 습관처럼 담배를 피워대는 퇴마사 콘스탄틴(키아누 리브스)은 폐암으로 죽음의 문턱에 서서도 그놈의 담배를 또 찾는다. 악마 루시퍼는 친절히 담뱃불을 붙여주며 이런 명대사를 던진다. “나도 담배회사 주주야.” 결국 콘스탄틴의 새까만 폐를 루시퍼가 끄집어내고, 기사회생한 콘스탄틴이 담배 대신 자일리톨 껌을 씹으면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거의 금연홍보물에 가까운 영화. 단, 이 영화에서 키아누 리브스는 까만색 고급 슈트 차림으로 무려 열네 번이나 담배를 꼬나무는데, 이게 이상하게 섹시해 보일 수도 있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다.

할리우드 청춘영화 ‘안녕, 헤이즐’에는 금연에 큰 힘이 되는 명대사가 등장한다. 시한부 청춘의 사랑을 그린 이 영화에서 주인공은 담배를 입에 물지만 결코 불을 붙여 피우는 법이 없다. 주인공은 이런 무지하게 철학적인 대사를 던지면서 금연을 인간 자유의지의 문제로 승화시킨다. “불을 붙이지 않으면 담배는 사람을 죽이지 못해. 죽음의 물건을 내가 가지고 있으면서도 죽음을 행할 수 있는 힘은 (담배에게) 주지 않는 거지. 이건 일종의 상징적 행위야.”

하지만 금연을 향한 결연한 마음을 한순간에 무너뜨리는 영화도 있으니 조심하시길. 바로 누아르 영화 ‘신세계’. 영화 속 중간 보스로 나오는 박성웅이 대만산 젓가락만큼이나 기다랗고 하얀 손가락 사이에 담배를 끼우고 연기를 뿜어대는 모습은 절대로 보아서는 아니 된다. 특히나 그가 부하들에 의해 제거되기 직전 마지막으로 “거기, 담배 하나 있으면 가져와봐라. 갈 때 가더라도 담배 한 대 정도는 괜찮잖아? 거, 죽기 좋은 날이네…”란 대사를 던지는 순간은 그 가공할 멋짐으로 인해 금연 결심이 우르르 무너지기 십상이다.

그 다음은 다이어트. 다이어트엔 마음 불편한 영화가 최고다. 보고 나면 철근 2만 t이 쌓인 것처럼 마음이 무거워지고 찝찝해지는 영화들을 보고 나면 식욕은 근절되기 마련이다.

‘윈터스 본’ ‘그을린 사랑’ ‘트라이브’는 불편한 외국영화 3종 세트. 작품성마저 뛰어난 이 세 영화의 열거 순서는 불편한 영화, 아주 불편한 영화, 무지하게 불편한 영화의 순이다. 우리말로 하면 ‘겨울의 뼈’라는, 이름부터 불편한 영화 ‘윈터스 본’은 실종된 아빠를 찾아 나선 시골 소녀가장의 이야기. 시간이 흐를수록 희망은커녕 절망에 절망이 겹치는 설상가상 점입가경 영화의 진수이다. 전쟁이 낳은 근친상간의 잔혹사를 그린 ‘그을린 사랑’은 ‘올드 보이’보다 열 배쯤 더 불편한 작품. 청각장애인 특수학교에서 일어나는 권력과 억압을 다룬 우크라이나 영화 ‘트라이브’에서 여자 주인공이 불법 낙태시술을 받는 장면과 남자 주인공이 패거리 우두머리에게 느닷없이 복수를 감행하는 마지막 장면을 보고 나면, 장담컨대 나흘 동안은 생선회와 삼겹살 생각이 전혀 안 날 것이다. 박유천 주연의 한국영화 ‘해무’와 하정우 김윤석 주연의 ‘황해’도 불편함 부문에선 둘째가라면 서러운 도륙 전문 영화다.

올해는 뭔지 모르게 섹시한 느낌이 풍기는 ‘붉은 원숭이의 해’인 만큼 색(色)의 유혹을 더욱 멀리하고 따스한 가정으로 돌아가 평생 속죄하겠다는 결심을 내밀하게 품은 유부남이라면 외화로는 ‘디테일스’나 ‘원와일드 모먼트’를, 한국영화로는 ‘마담뺑덕’이나 ‘가시’를 추천한다. 각각 정신과 여의사, 친구의 딸, 시골 무지렁이 처녀, 여고생을 탐하였다가 인생 종치는 아저씨들의 식겁할 이야기들이다. 욕망 아저씨들의 금욕을 위한 한층 센 처방전으로는 2007년 미국 선댄스 영화제에서 화제를 모은 상상력 넘치는 영화 ‘티스’를 강력 추천한다. ‘이빨’이란 뜻의 제목 그대로 이 영화는 성기에 이빨이 달린 채 태어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남자들을 무참히 절단해버리는 한 여성의 이야기를 담았다. 순결이 갖는 딜레마를 다루는 이 영화는 어떤 남성들에겐 매우 교훈적일 듯.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