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4차 핵실험 다음 날인 어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오전 7시 37분부터 57분까지, 박근혜 대통령과는 오전 9시 55분부터 10시 15분까지 각각 20분씩 통화했다. “동맹국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모든 조치를 취하겠다”고 다짐하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강력한 대북 제재 결의가 신속히 통과되도록 협력하기로 한 통화 내용은 비슷하다. 그러나 북한발(發) 위기인데도 한국보다 일본과 먼저 통화한 것은 미국의 주요 안보협력 파트너가 어느 나라인지를 보여준다. 한미 정상이 작년 10월 워싱턴 회담에서 “북핵 문제를 최고의 시급성과 확고한 의지를 갖고 다루기로 합의했다”며 북한에 관한 첫 공동성명을 낸 것이 무색해진 상황이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그제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통화를 시도했지만 ‘시간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연결이 안 돼 주한 중국 대리대사에게 대신 협조를 구해야 했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과 창완취안 중국 국방부장과의 핫라인 통화 역시 성사되지 못했다. 한일 외교장관 통화는 일본이 먼저 요청해 이뤄졌다. 일본은 그제 오전 11시 44분 아베 총리 주재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열었으나 박 대통령이 주재한 NSC는 오후 1시 반에 열렸다. 이병호 국가정보원장이 그제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북의 핵실험을 사전에 알지 못한 ‘정보전의 패배’를 인정한 것은 이 정부의 능력을 여실히 보여준다.
어제 새벽 열린 유엔 안보리는 ‘중대한 추가’ 조치를 담은 대북 제재 결의안 마련에 나섰다. 미국에선 차제에 북을 쿠바처럼 봉쇄해야 한다거나, 북과 거래하는 모든 기업을 제재하는 ‘세컨더리 제재’를 추진해야 한다는 등 다양한 의견이 제기된다. 이란 핵 제재 때 적용했던 ‘세컨더리 제재’가 효과적이다. 일본도 독자 제재까지 검토 중이다. 그런데도 한국 정부는 이번 핵 실험이 수소폭탄급이 못 된다는 점을 부각하는 데에만 급급하고 있다. 수소폭탄이든 아니든 북의 핵위협이 훨씬 심각한 단계로 진입했는데 외교, 정보, 국방 라인은 타성에 젖은 듯 신속하고 긴박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북핵 위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쪽으로 남은 임기의 정책 방향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남북 간 긴장이 고조될 가능성이 높지만 그런 위험 부담을 피하면서 비상 상황을 헤쳐 나갈 수는 없다. 박 대통령과 정부가 현실을 직시하고, 국제사회의 협조를 얻어 우리가 원하는 방식의 대북 제재와 북핵 해법을 주도적으로 추진해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