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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호의 생생 인터뷰] 나지완의 국민밉상 탈출법? 결정적 한 장면을 꿈꾸며…

입력 | 2016-01-08 05:45:00

2009년 한국시리즈 7차전 끝내기 홈런의 주인공인 KIA 나지완은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금메달과 병역특례 이후 ‘부상 숨기기’ 의혹으로 지금까지 큰 비난에 시달리고 있다.스포츠동아DB


야구스타를 향한 해바라기성 인터뷰가 아니라, 누구나 한 번쯤은 궁금했을 이야기, 그리고 누군가의 털어놓고 싶었던 속내를 담고자 합니다.

부상 숨기고 AG? 팔꿈치 시즌 전부터 아팠죠
대표팀·2015시즌 연이은 부진 안티팬 폭증
우승 후 병역회피 고발 당해…정신과 치료도
선수는 그라운드서 관중 마음 되돌릴 수밖에


나지완(31·KIA)은 왜 ‘국민밉상’이 됐을까. 프로야구선수 중 나지완은 오재원(31·두산)과 함께 가장 욕을 많이 먹는 선수였다. 그러나 오재원에게는 든든한 두산 팬들의 사랑과 응원이라도 있다. 나지완은 언젠가부터 스스로도 “KIA 팬들에게 욕먹을 때가 가장 슬프다”고 할 정도로 홈팬들로부터도 외면을 당하고 있다. 이제 오재원은 두산의 우승, 그리고 ‘프리미어 12’ 한일전에서의 맹활약을 통해 밉상 이미지를 어느 정도 지워냈다. 그러나 나지완은 여전히 가장 어두운 곳에 서 있다.

2009년 10월 나지완은 KIA의 영웅이었다. 160년 역사를 자랑하는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에서도 볼 수 없었던 한국시리즈 7차전 9회말 끝내기 홈런을 터트렸다. 이후 인터뷰에서 ‘7차전 홈런과 로또 1등을 바꾸겠는가?’라는 질문에 “절대 안 된다”고 답해 ‘나로또’라는 친근한 별명도 얻었다. 그러나 나지완을 향한 ‘로또’라는 표현은 어느새 너무도 성공 확률이 떨어지는 타자를 일컫는 비난으로 변했다.

결정적인 비호감 이미지의 출발은 아이러니하게도 나지완이 기쁨의 눈물을 흘리던 그 날이었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병역 기피는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잘못이다. 나지완은 합법적으로 병역의무를 해결했다. 2014인천아시안게임 야구 금메달리스트로 병역특례 혜택을 받았다. 그러나 감격적인 그 순간 직후 나지완에 대한 세상의 시선은 달라졌다.

그로부터 1년여가 훌쩍 지나도록 비난만 있을 뿐 자세한 해명은 없었음이 놀라웠고, 그 속내가 궁금해졌다. 첫 인터뷰 요청에는 “조용히 있는 게 좋을 것 같아요”라는 정중한 거절이 돌아왔다. 그러나 침묵은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않는다. 두 번째 요청에 조심스러운 응답이 시작됐다.

-2014년 아시안게임 우승 직후 경기장에서 취재진에게 팔꿈치 부상을 고백했는데, 그날 이후 많은 것이 바뀌었죠.(당시 나지완은 ‘아무것도 한 게 없어서 동료들에게 너무나 미안했고 눈물이 났다. 이전에 오른쪽 팔꿈치를 다쳐서 많이 아팠다. 캠프 때부터 주사를 맞고 참고 뛰었는데 한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아시안게임에서 3타수 무안타를 쳤어요. 부진했죠. 사실 대회 시작 직전 LG와 평가전 때는 스타팅 멤버였습니다. 시즌 때 타율도 3할 중반에 가까웠고, 홈런도 19개를 치고 있을 때라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꼭 우승하고 싶은 마음도 컸었죠. 대회 때는 저보다는 (손)아섭(롯데)이가 주로 나갔어요. 한 것도 없는데 금메달에 병역혜택까지 받아서 한꺼번에 그냥 미안함이 몰려왔습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그 마음을 많이 표현하고 싶었나 봐요….”

당시 현장 분위기는 ‘다른 선수도 아닌 나지완이 왜 나서서 인터뷰를 하고 있을까’였다. 그리고 시작된 말은 더 놀라웠다. 오해의 소지가 매우 컸다. 부상을 숨긴 것이 사실이라면 엄청난 파장이 불가피했다.

-핵심은 부상을 숨기고 대표팀 유니폼을 입었느냐에 있는 것 같아요. 팔꿈치는 언제부터 아팠나요?


“아시안게임 우승 직후 인터뷰 때도 말을 하긴 했는데, 1월 스프링캠프부터 통증이 있었어요. 치료나 수술을 하지 않은 것은 사실 2014시즌 중반, 전반기 끝날 무렵에 군대에 갈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병무청에서도 그 시기쯤 영장이 발부된다고 했고. 팀의 요청으로 어쩔 수 없이 입대를 계속 미뤘기 때문에 시즌 중에 가야 하는 상황이었죠. 입대 전이라서 정말 후회 없이 야구를 하고 싶었어요. 팔꿈치에 통증은 있었지만, 방망이 감도 좋았고 시즌 초부터 굉장히 잘 맞았어요.”

-클럽하우스 라커룸에 징집영장 붙여놓고 야구한다는 소식이 기억나요. 그럼 대표팀에 합류했을 때도 경기력에 문제는 없었나요?


“그랬다면 기술위원회와 코칭스태프에서 안 뽑지 않았을까요? 팔꿈치가 아팠지만 굉장히 좋은 기록을 이어가고 있었고, 아시안게임 때도 잘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갖고 있었어요. 물론 제가 못한 결과지만, 오직 군대를 안 가려고 부상을 숨기는 일은 생각할 수도, 있을 수도 없는 일입니다”

-이후 비난이 쏟아졌고, 대표팀에서 제외됐던 팀 동료 안치홍이 입대하면서 더 커졌죠. 그러나 해명은 없었습니다.


“‘구단이 나지완을 밀었다’, ‘안치홍과 싸웠다’는 말이 가장 힘들었어요. 대표팀 선발 때 치홍이가 가장 먼저 축하전화를 해줬어요. 그 후에도 가장 많은 격려를 해줬어요. 형제 같은 사이인데, 미안한 마음이 많이 들죠. 저만 대표팀에 가게 돼 치홍이가 안쓰러웠고 미안했습니다. 치홍이가 야구를 정말 잘하고, 그 때도 굉장했기 때문에 더 그랬죠. 그 때 치홍이가 또 거론되면 피해를 주는 것 같아 싫었어요(당시 안치홍은 입대 결정 과정에서 또 다른 논란의 중심이었다). 그리고 금메달 수상 후 어떤 사람이 절 병역회피로 고발했어요. 그런 분위기에서 뭐라고 섣불리 말하기가 어려웠고, 스스로 잘한 게 없었기 때문에 조용히 있었습니다.

-2015시즌 부진이 겹치면서 원성은 더 커졌어요.

“점점 밖에 나가는 게 두려웠고, 누가 쳐다보면 욕하는 것처럼 환청이 들리기도 했어요. 모자 눌러 쓰고 마스크를 쓰기도 했는데, ‘지가 연예인인줄 알아?’라는 말이 들렸어요. 전 누가 절 알아보는 게 두려워서 그랬는데, 더 욕을 먹고, 그럼 더 숨기고…. 그렇게 반복됐죠.”

-치료를 받아야 할 것 같은데.

“사실 정신과를 몇 개월 동안 다녔어요. 3년 동안 매년 군대를 가려고 했는데, 나이도 있고 빨리 다녀오는 게 좋을 것 같았죠. 그 때마다 팀에 부상자가 많았어요. 팀의 요청을 받고 ‘그래, 내년에 가자’, 그러다 2014년까지 왔습니다. 성적도 좋고 병무청에서 연말까지 정말 마지막으로 가능하다고 해서 ‘대표팀을 목표로 해보자’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막상 아시안게임 때 보탬도 안됐고, 그런 일도 있고 해서 2015년에는 정말 잘해보고 싶었어요. 팔꿈치 뼛조각 수술 후 재활과 훈련을 열심히 했는데, 캠프 막바지에 갈비뼈가 부러졌어요. 사실 다 핑계죠. 프로는 결과로 말해야 하는데, 지난해 전 선수도 아니었습니다.”

잠시 ‘선수 나지완’의 팀에 대한 공헌을 살펴봤다. 2009년 데뷔 이후 2010년을 제외하고는 출루율이 3할6푼 이하로 떨어진 적이 없었다. 2010년대 초반 팀 전체가 연이은 부상으로 시름할 때 외로이 중심을 지키기도 했다. 그러나 떨어진 이미지를 뒤바꾸기 위해선 지금껏 보여준 것보다 훨씬 더 야구를 잘해야 할 듯하다.

“최근 올 시즌 후 FA(프리에이전트)가 되는 선수 명단이 소개되면서 제 이름이 기사에 몇 번 나왔어요. 많은 비난이 이어졌습니다. 군대도 안 가고 야구도 못했는데, FA 앞두고 있는 상황, 저도 죄송할 뿐입니다. 지난해 제가 못해서 우리 팀이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것, 저도 알고 있어요. FA라는 단어는 제게 지금 와 닿지도 않아요. 단지 야구장에서 제 마음을 관중들에게 전할 기회를 바랄 뿐입니다. 그래야 홀가분하게 외출도 하고, 작은 행복이라도 느끼며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영화 ‘내부자들’ 속 “모히토 가서 몰디브 한 잔 하자”는 대사는 추락한 유명인 이병헌을 영화배우 이병헌으로 되살린 결정적 한 장면이다. 영화배우가 아닌 나지완에게는 더 길고, 더 많은 결정적 장면이 필요하다. 특히 그는 국가대표 때 잃은 응원을 소속팀에서 되찾아야 한다. “이제 헬스장 가야죠. 외출은 되도록 피하는데 운동하러 매일 나가요. 그래야 살죠”라며 대화를 마친 나지완에게 기회는 있을까.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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