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전체가 공사판… 1기 책임감으로 독하게 공부”
지금은 KAIST가 국내 최고의 이공계 대학으로 평가받지만 1986년 개원 당시에는 환경이 열악했다. ‘미국 주립대 수준’이라는 말에 서울 소재 우수 대학을 포기하고 KAIST를 선택한 1학년 학생들은 실망감이 컸다. 이희승 KAIST 화학과 교수는 “공사가 덜 끝나 학교 전체가 공사판이었다”며 “학교에 정이 안 들어 매주 서울 집에 다녀왔다”고 회상했다.
접근성도 떨어졌다. 외딴곳에 대학 건물만 덩그러니 서 있어 학교 밖으로 나가기가 불편했다. 하지만 ‘KAIST 1기’라는 책임감이 모든 상황을 버텨내게 했다. 이 교수는 “우리(1기)가 잘못되면 학교가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KAIST를 택한 결정을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더 열심히 공부했다”고 말했다.
전산학 전공인 이 교수는 친구들과 매일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며 밤을 새우는 일이 다반사였다. 전산학과 학생들 사이에서는 손가락에 생긴 굳은살을 보고 프로그래밍 실력을 가늠한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였다. 교수들도 학생들 못지않게 열정적으로 가르쳤다. 그는 “부처님오신날 등 공휴일에도 정상적으로 수업을 했다”며 “1년 중 유일하게 쉬는 날은 어린이날뿐이었다”고 말했다.
남택진 KAIST 교수(아래)가 30년 전인 1986년 학생 식당에서 식사 중에 찍힌 자신의 모습(위)을 똑같이 재현했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 그는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항상 기록을 남겼다고 한다. 남택진 KAIST 교수·과학동아 제공
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아야만 연구를 할 수 있다는 편견도 깼다. 이희승 교수는 “86학번이 KAIST 대학원에 대거 진학하면서 국내 과학 연구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었다는 점에서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과학동아는 창간 30주년 기념으로 ‘86학번 동기’들을 계속 찾아다닌다. 다음 달에는 서울대 물리학과 86학번들을 만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