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정석원. 스포츠동아DB
연기자 정석원(31)에게 영화 ‘대호’는 특별함 그 이상의 작품이다.
흥행 성과를 떠나 앞으로 연기자로 살아갈 날들에 적지 않은 힘의 바탕이 될 만한 작품으로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그 힘으로 새해에는 더욱 활발한 연기 활동에 나서겠다는 의지도 다지고 있다.
정석원은 ‘대호’(감독 박훈정·제작 사나이픽쳐스)의 시사회 전날을 돌이키며 “잠을 못 이뤘다”고 했다. 생각이 끊임없이 이어진 탓이다.
완성된 영화를 본 순간, 정석원은 자신의 옆에 있던 배우 최민식을 바라보다가 “먹먹한 마음에” 눈물을 흘렸다.
정석원에게 남긴 기억처럼, ‘대호’는 간단치 않은 영화다.
1925년 조선 최고의 포수인 천만덕(최민식)과 지리산을 지키는 ‘산군’으로 통하는 호랑이의 대서사시다.
그 속에서 정석원은 조선인이지만 일본군 장교로 호랑이 사냥에 몰두하는 인물 ‘류’를 연기했다.
“말 못하는 장씨네 집 막내아들이다. 조선을 지긋지긋하게 여겨 빨리 만주로 떠나고 싶어 한다. 성취욕과 출세욕이 크지만 반대로 피해의식도 있다. 동네 사람들과 같이 포수대에 있었다. 성공하기 위해 호랑이를 잡고 싶어 하지만 쉽지 않다.”
정석원은 ‘대호’를 찍으면서 “내적인 갈등이 엄청났다”고 했다. 비록 영화 속 상황이지만 자신의 역할로 인해 극중 여러 인물이 희생당한다는 생각이 짙었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촬영장에 함께 있는 최민식은 그 존재만으로도 각별했다.
정석원이 돌이킨 ‘대호’의 촬영장은, 사실 ‘최민식과 함께 보낸 하루하루’라고 표현해도 무리가 아니다. 그 경험 덕분에 정석원은 “연기를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비로소 알았다”고 했다.
정석원에게 최민식의 모습은 낯설었다. 그래도 “한 번 따라해 보자”는 생각에, 그 역시 매일 촬영장을 지켰다. 자신의 촬영 분량이 없는 날에도 어김이 없었다.
“영화 시상식에서 배우들이 스태프들 이름을 부르면서 고맙다고 말하지 않나. 그 이름을 어떻게 다 외울까 싶었는데, ‘대호’를 찍고 나니 나 역시 전부 외우게 됐다. 하하!”
배우 정석원. 스포츠동아DB
● “상처받아도 버티자는 마음, 결혼 뒤에는 일에 더 집중하게 돼”
정석원은 최근 영화 참여 횟수를 늘리고 있다. 본격적인 영화 도전은 2012년 ‘알투비:리턴 투 베이스’부터였다. 얼마 전 ‘서부전산’으로 관객과 만났고 ‘대호’까지 굵직한 작품의 조연으로 실력을 쌓아가는 중이다.
“수많은 배우들의 인터뷰 기사들을 빠짐없이 본다. 선배들이 얘기하는 영화 작업 현장에 대한 호기심, 궁금증이 있어서다. 선배들의 말을 접하면서 내가 세운 첫 번째 목표는 영화에 무조건 ‘들이대’ 보자는 거였다.”
그런 의미에서 ‘대호’는 정석원에게 전환점과 같은 영화다.
“감히, 내가? 그런 마음도 있었지만 참여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좋았다. ‘해보자’, ‘상처받더라도 버텨보자’는 심정으로 출발했다. 예전에는 힘든 일을 훌훌 털어냈지만 이제는 전부 받아들이려 한다. 굳은살도 필요한 것 같다.”
액션스쿨에 다니며 무술 연기자로 출발한 정석원은 누고보다 신체조건이 탁월하다. 요즘도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라는 이유로 복싱 훈련장을 드나든다. 근력운동을 하다보면 몸이 자꾸만 커지는 탓에 선택한 종목이 복싱이라고 했다.
“몸도 가만히 두면 녹이 슨다. 3년 정도 지나면 나도 내 몸을 마음껏 쓰지 못할 것 같다. 그 전에 제대로 된 액션영화 한 편 하고 싶다.”
한결 여유로워진 정석원의 마음은 ‘결혼’의 영향이 크다. 2013년 가수 백지영과 결혼한 그는 “완벽한 내 편이 생겨 일에 더 집중할 수 있다”고 했다. 때로 “마음이 든든하다”고 했다.
‘대호’를 본 아내의 평가는 어땠을까.
“많이 울더라. 호랑이에 감정이 이입된 것 같았다. 하하!”
스포츠동아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