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란 동물은 여러모로 특이한 존재다. 생존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일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입하며 그 일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자연의 생물학적 법칙만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또한 인간은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경제성의 법칙에서도 벗어나 있는 듯 보인다. 몸을 보호해주는 자기 고유의 털을 벗고, 남의 털을 얻어 입어야 하는 존재로 진화한 결과로서의 우리의 모습이 단적으로 이 점을 증명해 준다. 생물학과 경제성의 관점에서 봤을 때 인간의 쓸데없는 짓의 극치는 아마도 예(禮)가 아닐까 싶다.
철학자 앙드레 베르제가 말했듯 인간은 ‘쓸데없는 행위를 할 필요를 느끼는 유일한 존재’인 것 같다. 그렇지만 이러한 행위들은 결코 쓸데없는 짓이 아니다. ‘쓸데’라는 것을 생존과 관련된 것에 국한시킬 때 그렇게 생각될 뿐인 것이다.
예로 든 관혼상제와 같은 통과의례는 물론이요, 입학·졸업·입사·퇴사·취임·이임이나 각종 기념일 등등에 인간은 의미를 부여하고 거기에 희로애락을 투영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왜 이처럼 쓸데없어 보이는 일들에 시간과 재화와 공을 들이는 것일까.
거기에는 ‘돌아보기’와 ‘함께하기’라는 중요한 의미가 들어 있는 것 같다. 삶의 과정에서 인간은 크고 작은 변화를 겪는다. 자라면서 학생이 되고, 사회인이 되고, 은퇴한 노년이 된다. 모든 변화의 시점에서 일정한 절차와 격식을 통해 우리는 스스로를 돌아본다. 옛사람들은 변화의 과정을 엄숙하고 경건하게 진행하기 위해 모든 의식에 예의 형식을 빌렸다. 집 안에 사당을 두고, 관혼상제와 계절의 순환, 신변의 변화가 있을 모든 절목에 조상에게 고하며 의미를 다지고, 그것이 끝나면 사람들과 어울려 먹고 마시며 희로애락을 나누었던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인간들은 이웃들과 늘 함께했음은 물론이다.
해의 의미도 이와 같을 것이다. 시간이라는 개념조차 없는 백지 상태의 자연에 인간은 눈금을 새겨 넣었다. 지구가 공전 궤도의 한 지점을 출발해 다시 그 자리에 오는 주기에, 자전 기간의 단위로 눈금을 매겨 놓은 것이 1년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1년의 끝과 시작인 연말연시에 의미를 부여한다. 이때는 현대인 누구나가 돌아보기와 함께하기의 정신을 발휘할 수 있는 시기다. 연초에 예의 정신을 돌이켜서 한층 성숙한 돌아보기의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
이치억 성신여대 동양사상연구소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