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환 작품 ‘위조 감정서’ 내용 가리고 직인 빠졌는데도 못 알아채 관계자들 “간단한 진위 확인도 소홀”
가짜 감정서가 붙은 그림이 이 화백 작품으로 등록돼 지난해 12월 K옥션 경매에서 4억9000만 원에 낙찰됐다는 동아일보 기사(8일자 A18면 )를 읽은 한 화랑협회 관계자의 말이다.
○ 급성장 경매시장 신뢰도 곤두박질
미술시장 관계자들은 감정서 발행처에 간단한 진위 확인조차 하지 않은 경매 시스템의 신뢰도 부족을 지적한다. 특히 최근 2년 새 4배 가까이 성장한 인터넷 옥션 시장을 이용한 소액 구매자들은 불안감과 배신감을 누르기 어렵다. 이들이 그림을 구매하며 믿고 기댄 건 오직 ‘국내 2위 대형 경매사인 K옥션’의 명망뿐이다. K옥션은 국내 최대 사설화랑 중 하나인 현대화랑 박명자 회장의 주도로 2005년 설립됐다. 지난해 금융감독원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박 회장의 장남 도현순 K옥션 전무, 남편 도진규 전 한국산업증권 부사장 등 친인척이 57.5%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미술평론가 정준모 씨는 “이번엔 메이저 경매에서 유명 작가의 작품이 큰 금액에 거래됐기 때문에 많은 이목을 끌어 감정서 위조 사실이 밝혀진 것”이라며 “개인 간 비공개 시장에서 얼마나 많은 가짜 감정서가 돌아다닐지 걱정스럽다”고 했다.
○ 해묵은 위작 논란 마침표 찍을까
경찰로부터 문제의 그림 ‘점으로부터 No. 780217’ 분석을 의뢰받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안료 재질 확인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이 화백 그림은 안료에 석채를 섞어 변색이 적은 게 특징인데 경매에 나온 그림은 탈색되다시피 변질된 상태였다”는 것이 감정 전문가들의 견해다.
해묵은 위작 논란이 뚜렷한 해결 없이 반복되는 건 객관적 진위 판단을 위한 기초 자료가 질적 양적으로 턱없이 부족한 탓이다. 크리스티, 소더비 등 해외 대형 경매사는 자체 감정 시스템 외에 유명 작가별 전문 재단이 발행해 정기적으로 개정하는 ‘전작(全作) 도록’을 데이터베이스로 활용한다. 전작 도록은 한 작가가 어떤 그림을 언제 완성해 누가 어떻게 보관해 왔는지 검증된 기록을 집대성한 자료다. 반면 이중섭 김환기 박수근 등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의 전작 도록은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이제 겨우 발간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공립 미술관 관계자는 “이 화백이 위작 논란이 일었던 2013년 자신의 작품 감정 권한을 박명자 회장과 신옥진 부산공간화랑 대표에게만 제한한 것도 감정서 위조를 부추긴 원인 중 하나로 보인다”고 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