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美 핵게임 본격화]
○ 김정은의 종착점은 미국의 핵보복 능력 무력화
김정은이 핵실험 나흘 만인 10일 인민무력부(한국의 국방부에 해당)를 방문해 ‘수소탄 실험’을 자위적 조치라고 강조하면서 핵개발을 독려한 것은 북핵의 최종 목표가 미국의 핵보복 능력 무력화에 있음을 강력히 시사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4차 핵실험 이후 김정은의 첫 언급이다.
이는 북한이 정치 외교적 수단뿐만 아니라 핵무기 실전 사용까지도 불사한다는 의미를 내포했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실제로 전문가들은 △속전속결로 전쟁 종결 △미 증원전력의 조기 차단 및 미국 내 반전여론 확산 △한미연합군 반격에 따른 전세 역전 상쇄 △정권 존립위기 돌파를 위해 북한이 한국에 선제 핵공격을 감행하는 시나리오를 내놓고 있다.
이 경우 북한으로선 미국의 ‘핵펀치’를 묶어놓는 게 최대 관건이다. 미국의 핵보복에도 살아남아 미 본토와 해외 주둔기지에 ‘제2격(second strike)’을 할 수 있다면 미국이 핵우산을 작동할 수 없을 것으로 김정은이 보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복안에 따라 북한은 최대한 많은 수의 핵미사일을 실전배치(다수화)하는 한편 증폭핵분열탄과 수소폭탄(다종화) 개발에 다걸기(올인)한 것으로 보인다. 군 관계자는 “북한은 핵이 실린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까지 배치하면 어떤 경우에도 체제 유지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4차 핵실험 이후 인민무력부를 방문해 연설하고 있는 모습을 노동신문이 10일자에 보도했다. 김정은은 핵실험에 대해 “주권국가의 합법적 권리이며 그 누구도 시비할 수 없는 정정당당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진 출처 노동신문
김정은은 핵무기만이 자신과 체제의 생존을 보장해줄 수 있고, 미국과 동등한 지위에서 평화협정 협상을 벌일 ‘최고의 카드’라고 생각한다.
천영우 전 대통령외교안보수석비서관은 “김정은은 실전 배치할 핵무기가 생존을 위한 최고의 보험이라고 생각한다”며 “미국과 협상하더라도 실전에 사용할 핵무기를 하나라도 더 많이 갖고 협상해야 더 많은 대가를 받아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천 전 수석은 “김정은이 이미 가진 핵무기를 포기하겠다는 게 아니라 지금까지 개발한 핵을 정당화시켜 핵보유국으로 인정해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들이 주장하는 핵강국, 핵보유국을 인정해주면 앞으로 핵개발을 유예(모라토리엄)할 수도 있다는 전략인 것.
김정은이 이를 위해 주장하는 것이 북-미 간 평화협정 체결이다. 노동신문은 10일 “평화협정을 체결하기 전에 비핵화를 해야 한다는 미국의 주장은 강도적 주장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노동신문은 미국의 전략적 인내를 실패한 전략으로 몰아붙이면서 “평화협정이 체결되고 긴장 격화의 발생 근원인 미국 적대시 정책의 종식이 확인되면 미국의 우려 사항을 포함한 그 밖의 모든 문제는 순간에 해결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 오바마의 ‘전략적 인내’ 지속될까
미국은 10일 B-52 전략폭격기를 한국으로 보내 대북 무력시위에 나서는 등 북한 핵실험에 대한 군사적 상응 조치에 돌입했다. 핵우산과 확장억제 능력 등 미국이 가진 모든 군사적 수단을 동원해 한국을 북핵 위협에서 보호하겠다는 의지를 행동으로 표출한 것.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윤완준·우경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