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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끄니 나만의 생각이 보여요

입력 | 2016-01-11 03:00:00

‘인터넷 없이 서평-기행문 쓰기’… 이화여대의 특별한 백일장




8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ECC 이삼봉홀에서 열린 ‘2016 이화 에크리’에 참석한 학생들이 읽은 책을 다시 살펴보며 서평과 기행문 쓰기에 집중하고 있다. 방학 중에 열린 이날 행사에는 158명의 학생이 참가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8일 오후 3시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ECC 이삼봉홀. 200명 가까운 사람이 책상과 테이블을 가득 채웠지만 ‘사르륵’ 책장 넘기는 소리와 ‘사각사각’ 연필 소리만이 홀 안을 채우고 있었다.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컴퓨터는 책상 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날 이삼봉홀에서는 ‘2016년 이화 에크리’가 열렸다. 프랑스어인 ‘에크리’는 글을 쓴다는 뜻. 행사에 참석한 학생 158명은 미리 정해진 책 5권 가운데 한 권의 서평이나 기행문을 썼다. 이날의 ‘백일장’이 특별한 이유는 어떤 전자기기도 이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3시간 동안 학생들은 오로지 자신이 가진 지식과 감성으로 글을 완성해야 했다. 디지털 정보는 마감시간을 알려주기 위한 대형 스크린의 디지털시계가 전부였다.

평소 인터넷 검색 자료를 마우스로 긁어 붙이고 편집한 뒤 키보드로 정리하는 데 익숙했던 학생들은 B4 용지 크기의 시험지에 연필로 2, 3쪽씩 글을 써 내려갔다. 길고 긴 3시간을 보낸 뒤 학생들은 “어떻게 책 읽고 생각하고 글을 써야 하는지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제러미 리프킨의 책 ‘한계비용 제로 사회’ 서평을 쓰고 나온 최윤영 씨(21·여·글로벌건강간호학 전공 2학년)는 “그동안 책을 가볍게 읽고 글쓰기 역시 다른 사람의 생각에 의존해 왔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고 얘기했다. 기행문을 써낸 학생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짤막한 여행 소감을 올리는 것과 전혀 다른 느낌을 경험했다. 지난해 스페인에 다녀온 이야기를 쓴 윤신우 씨(21·사회학 전공 3학년)는 “여행 중에도 SNS에 글을 많이 올렸지만 대부분 ‘멋있다’, ‘맛있다’처럼 좋은 것만 보여줬는데 이번엔 길을 잃고 헤매던 나쁜 경험까지 담아서 썼다”고 했다.

흔하디흔한 백일장이 특별한 행사로 눈길을 끄는 것은 학생들이 인터넷과 SNS에만 몰입하는 세태의 영향이 크다. 정보의 양은 무한대로 늘어났지만 정작 많은 학생들은 ‘나만의 것’을 만들어 내는 데 어려움을 호소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성균관대는 지난해 스마트폰을 맡기고 책을 읽는 행사를 열기도 했다.

에크리를 주최한 장미영 호크마교양대학장(59·여)은 “긴 호흡으로 읽어야 하는 책이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자신의 손으로 직접 쓰는 글이 인생에 얼마나 중요한 자양분이 되는지 알려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