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굴 탈옥 6개월만에 고향서 전격체포
한 번은 교도소 빨래 바구니에 숨어서, 또 한 번은 1.5km의 땅굴을 파 탈옥한 호아킨 구스만(58). 세계 최대 마약왕이자 탈옥왕인 구스만의 덜미를 잡은 건 자전적인 영화 제작 욕심이었다.
멕시코 해군과 미국 마약단속국(DEA)은 8일 구스만의 고향인 시날로아 주 모텔을 급습해 속옷 차림의 구스만과 간부급 조직원 6명을 붙잡았다. 지난해 7월 멕시코시티 연방교도소 샤워실에서 공사장과 연결된 땅굴을 통해 탈옥한 지 6개월 만이다.
AP통신은 구스만이 미 영화배우 겸 감독 숀 펜(56)과의 인터뷰로 꼬리가 잡혀 체포됐다고 9일 보도했다. 아렐리 고메스 멕시코 검찰총장도 구스만 체포 기자회견에서 “구스만이 자전적인 영화 제작에 관심을 보였다. (구스만과) 영화 제작사들 사이의 통화를 추적해 검거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펜은 9일 미국 잡지 롤링스톤에 공개한 인터뷰 전문에서 첩보작전 같았던 인터뷰 후기를 전했다. 그는 구스만과 통화한 직후 휴대전화를 바로 폐기했고, e메일 주소도 여러 개 만들었다. 인터뷰는 지난해 10월 28일 멕시코 산꼭대기 정글에서 저녁 식사를 겸해 진행했는데, 인터뷰 장소로 이동할 때는 구스만의 아들이 조종하는 경비행기를 이용했다.
인터뷰 장소 주위에는 조직원 100여 명이 삼엄한 경비를 서고, 통역은 카스티요가 했다. 구스만은 실크 셔츠와 블랙 스키니진을 말쑥하게 차려입고 인터뷰에 응했으며, 이후에도 전화통화, e메일, 메신저, 영상 교환 방식으로 추가 인터뷰가 이뤄졌다.
구스만은 지난해 7월 ‘땅굴 탈옥’에 대해 “성공적인 땅굴 공사를 위해 기술자를 독일로 보내 ‘특별 수업’을 받도록 했다”고 털어놓았다. 또 “여섯 살 무렵부터 생계를 위해 마약 거래를 했을 뿐 지난 20년간 마약을 한 적도 없다”고 주장했다. 펜은 “전설적 마약왕 에스코바르는 부하의 손에 죽었다. 당신의 말년은 어떻게 예상하느냐”라고 물었고 구스만은 “언젠가 죽겠지만,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았으면 좋겠다”라고 답했다.
키가 168cm로 ‘엘 차포’(키 작은 사람)라고 불리는 구스만은 멕시코 최대 마약 조직 시날로아 카르텔의 우두머리다. 1993년 과테말라에서 체포돼 20년 형을 선고받았으나 2001년 1월 교도관을 매수해 빨래 바구니에 숨어 탈옥했다. 이후 경쟁 마약 조직을 하나 둘 제거해가며 10억 달러가 넘는 부를 쌓았고, 이 과정에서 8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2014년 2월 미국과 멕시코의 공조 수사로 체포됐지만 지난해 7월 재탈옥에 성공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