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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임희윤]대통령과 ‘불편한’ 문화

입력 | 2016-01-12 03:00:00


임희윤 문화부 기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공연장에서 눈시울을 붉힌 장면이 요즘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화제가 됐다.

지난해 12월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케네디센터 아너스’ 갈라 콘서트에서의 실황이다. 케네디센터 아너스는 미국 문화 발전에 기여한 이에게 매년 수여되는 평생공로상. 2015년 수상자엔 가수 캐롤 킹, ‘스타워즈’의 영화감독 조지 루커스, 지휘자 오자와 세이지가 포함됐다.

우리로 치면 이미자(75)쯤 되는 솔의 여왕, 어리사 프랭클린(74)은 이날 킹을 기리는 무대에 깜짝 등장했다. 곡목은 1967년 프랭클린의 대표곡이 된 ‘유 메이크 미 필 라이크 어 내추럴 우먼(You Make Me Feel Like A Natural Woman)’. 노장의 혼신을 다한 열창에 관객 모두가 일어나 경의를 보냈다.

2층 객석에 킹과 나란히 앉아 있던 오바마는 노래 첫 소절이 나오자마자 눈가를 훔쳤다. 오랜 세월 국민과 함께한 노래에 함께 감동하는 대통령의 모습에 미국 국민들은 또 한 번 감동했다.

오바마는 ‘음악 정치’의 달인이다. 지난해 12월 그는 피플지와 인터뷰에서 올해 가장 즐겨 들은 노래로 래퍼 켄드릭 라마(29)의 ‘하우 머치 어 달러 코스트(How Much a Dollar Cost)’를 꼽았다. 가사 내용은 이렇다. 이기적인 부자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허름한 주유소 앞에서 걸인을 맞닥뜨린다. 걸인은 1달러 지폐 한 장을 구걸한다. 부호는 그를 무시하고 지나치려 한다. 알고 보니 그 걸인이 신이었다. 깨달음을 얻은 부호는 용서를 구한다.

지난해 8월 오바마는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스포티파이’에 ‘대통령의 여름 플레이리스트’라 명명한 40곡짜리 선곡 표를 공개했다. 재즈와 힙합, 21세기 록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선택은 영락없이 음악 마니아의 것이었다. 영국 밴드 콜드플레이는 오바마가 지난해 6월 찰스턴 흑인 교회 총기 사건 사망자의 장례 예배에서 직접 부른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를 얼마 전 신곡에 삽입했다.

대중음악 담당기자로서 언젠가 한국 대통령의 추천 곡 목록을 분석하는 글을 써보고 싶다. 2014년 정부는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을 문화가 있는 날로 지정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이를 장려하기 위해 각종 문화행사에 참석했다. 애니메이션 ‘넛잡’, 뮤지컬 ‘김종욱 찾기’, 허영만전, 태권도 IT 융·복합 공연…. 하지만 대중음악 공연장을 방문한 기록은 찾을 수 없다.

건물주들의 무자비한 임대료 올려 받기로 밀려나는 예술인, 자신의 곡이 1000번 넘게 재생돼도 한 푼 받기 어려운 음악인,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서명에 참여했다고 정부 지원 사업에서 탈락하는 문화인들을 보듬는 게 버겁다면, 좋다.

대통령이 원로 트로트 가수, 서울 홍대 앞 록 밴드, 클럽에서 열리는 래퍼나 DJ의 공연에서 “풋 유어 핸스 업·put your hands up)”, ‘손 머리 위로’ 하는 모습이라도 보고 싶다. 대중과 살 맞대며 웃음과 눈물을 섞는 융·복합, 국민의 감성을 껴안는 포퓰리즘은 언제든 환영이다.

임희윤 문화부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