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야구선수 박찬호. 사진=ⓒGettyimages멀티비츠
이원국 1960년대 미국 트리플A까지 경험
박찬호 다저스 입단후 유망주 미국행 봇물
박병호 김현수 등 KBO출신 빅리거 활짝
1968년, 아직 한국에 프로야구도 없던 시절에 투수 한명이 원대한 꿈을 품고 태평양을 건넜다. 한국야구 최초로 꿈의 무대로 불리는 메이저리그 도전이 시작됐다. 수많은 야구팬들은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리그에 도전한 주인공을 박찬호로 기억한다. 그러나 그 역사는 48년 전에 이미 시작됐다.
박찬호는 메이저리그 도전에 성공한 첫 사례다. 1994년 LA 다저스에 입단했고, 마이너리그를 거치지 않고 곧장 메이저리그에 입성했다. 이후 박찬호가 다저스의 주축 선발로 활약하기 시작하면서 수많은 유망주들이 미국으로 날아갔다. 박찬호를 필두로 김병현, 서재응, 김선우, 최희섭 등이 2000년대 초반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했다. 그러나 서서히 코리안 빅리거의 수는 줄었고, 2013년 류현진이 다저스에 입단하기 전에는 추신수(텍사스)만 한국인 메이저리거의 명맥을 이었다.
류현진에 이어 강정호(피츠버그)가 큰 성공을 거두면서 이제 흐름은 고교나 대학 유망주의 미국 도전이 아니라, KBO리그 스타의 빅리그 직행 또는 일본 경유가 대세로 자리를 잡았다. 올해는 무려 6명의 한국선수가 메이저리그에서 활약을 예고하고 있다. 이대호까지 가세하면 7명에 이른다.
전설적인 강속구 투수로 꼽히는 야구원로 이원국은 1966년 중앙고 3학년 때 일본 도쿄 오리온스(현 지바롯데 마린스)에 스카우트될 정도로 크게 주목 받았다. 그러나 외국인선수 보유제한 규정으로 입단에 실패하자, 더 큰 무대인 미국을 선택했다. 프로리그도 없던 한국야구에 대한 평가가 매우 박했던 시절, 이원국은 샌프란시스코, 몬트리올, 디트로이트 산하 마이너리그에서 계속 빅리거의 꿈을 키워 트리플A까지 올라갔다. 메이저리그 데뷔는 이루지 못했지만, 이후 멕시칸리그에서 150승을 거두며 인상적인 족적을 남겼다. 이재우 전 OB 감독도 1972년 오클랜드에 입단해 트리플A까지 진입했다. 박철순은 1980년 밀워키에 당시로선 파격적인 계약금 1만달러를 받고 입단해 더블A까지 올랐지만, 1982년 한국프로야구의 출범과 함께 이적료를 지불한 OB 유니폼을 입고 돌아왔다.
● ‘박찬호 키즈’, 빅리그의 문을 활짝 열다!
박찬호의 성공은 한국야구의 유망주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꿔놓았다. KBO 집계 결과, 1994년부터 지난해 강정호까지 총 53명이 메이저리그 팀과 계약했다. 이 중 김병현(KIA)이 애리조나의 마무리투수로 활약했고, 서재응(KIA)은 뉴욕 메츠가 기대하는 최고의 유망주 투수였다. 최희섭은 시카고 컵스에서 뇌진탕 부상을 당하기 전까지 현역 500홈런 타자인 앨버트 푸홀스(LA 에인절스)를 능가하는 대형 신인이었다.
한국인 메이저리거들의 맹활약, 그리고 유망주들의 급격한 유출로 1990년대 후반 KBO리그의 인기는 급속도로 떨어지기도 했다. 2009년에는 무려 9명의 고교생이 미국 팀과 계약했다. 그러나 지난해 강정호까지 메이저리그 데뷔는 13명만이 이뤘다. 13명 중에서 이상훈, 구대성, 류현진, 임창용, 강정호 등은 KBO리그 출신이다. 이제 새롭게 김현수(볼티모어), 박병호(미네소타), 오승환(세인트루이스) 등이 이 대열에 가세함에 따라 KBO리그에서 성장한 뒤 메이저리그의 문을 노크하는 편이 훨씬 안정적인 길임이 입증됐다.
● 코리안 빅리거 제2의 전성시대
12일(한국시간) 오승환은 세인트루이스와 2년 최대 1100만달러(약 133억원)에 도장을 찍었다. 최근 메이저리그에서 손꼽히는 강팀이자, 인기구단인 세인트루이스는 불펜투수로는 파격적인 금액에 한국과 일본에서 최고의 마무리로 활약한 오승환을 영입했다.
터줏대감이자, 코리안 메이저리거 중 유일하게 KBO리그 출신이 아닌 추신수를 비롯해 류현진, 강정호, 박병호, 김현수, 그리고 오승환까지 6명이 포진하며 메이저리그에 대한 관심은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여기에 국가대표 4번타자 이대호도 약속된 50억원의 거액을 뒤로하고 꿈을 위해 메이저리그 도전을 계속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