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다잉法 통과 이후]<下>평소 ‘품위있는 죽음’ 교육 필요
8일 ‘웰다잉법’(호스피스 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 통과 소식을 들은 김모 씨(78)는 “자식들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사전의료의향서에 연명의료를 하지 않겠다는 서명을 하겠다”고 말했다. 마지막 삶을 스스로 결정하게 한다는 웰다잉법의 취지와 달리 김 씨처럼 경제적으로만 접근하는 어르신이 많다.
10여 년간 죽음준비교육 전문강사로 활동해온 유경 씨는 “웰다잉법 통과 이후 이처럼 문의하는 어르신이 부쩍 늘었다”며 “몇몇 어르신은 연명의료를 거부하지 않으면 자식의 경제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 ‘못된 부모’로 여겨질까 봐 걱정한다”고 전했다.
지난해 8월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죽음준비교육’을 시범사업으로 도입했다. 6주 동안 진행된 이 프로그램 이름은 ‘아름답고 존엄한 나의 삶’. 참가자 156명은 사전의료의향서, 사전장례의향서, 유언장을 직접 써 보면서 언제, 어떻게 다가올지 모르는 죽음에 대해 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점을 배웠고, 바람직한 죽음에 대해서도 고민했다. 참가자 조용연 씨(52)는 “교육 이후 죽음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떨쳤고 삶은 매순간 스스로 선택하는 것임을 알게 됐다”며 “그러면서 삶을 더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됐다”고 말했다.
○ 집에서 가족이 바라보는 가운데 생을 마감
그렇다면 어떻게 생을 마감하는 것이 가장 편안하고 행복한 죽음일까. 전문가들은 “집에서 가족이 모두 모인 가운데 생을 마감하는, 즉 ‘홈다잉(Home Dying)’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기동 성균관대 유학동양학부 교수는 “예전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은 집, 특히 평생 삶의 터전이자 가장 편안한 공간인 안방에서 생을 마감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20여 년 전부터 병원에서 각종 의료기기를 줄줄이 단 채 죽음을 맞이하는 게 일반적인 상황이 됐는데, 이 같은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것.
이를 위해선 가정 호스피스 확대가 가장 중요하다. 정통령 보건복지부 생명윤리정책과장은 “말기 환자들이 집에 머물지 못했던 이유는 통증 완화의료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지역마다 호스피스 거점 센터를 둬 총괄하도록 하고,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방문 진료를 통해 완화의료를 시행하는 체계를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행복하게 죽음을 맞도록 하는 프로그램도 마련돼야 한다. 가령 호스피스 완화 기관인 강릉 갈바리 의원에서는 임종을 앞둔 환자의 의식이 혼미해지기 전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하고 싶은 이야기를 나누는 ‘이별파티’를 진행한다. 이날 환자와 가족은 울고 또 웃으며 “사랑한다”, “고맙다”, “행복했다”는 말을 주고받는다.
○ 심폐소생술 대신 안아주며 “사랑한다”고 속삭여
황애란 연세대의료원 간호사(아동청소년완화의료 가족상담사)는 “올바른 웰다잉 문화 정착을 위해선 본인의 죽음뿐 아니라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는 것에 대한 준비도 포함해야 한다”고 지적하며 몇 해 전 암으로 죽은 5세 아이와 부모를 회고했다. 당시 아이가 죽음에 임박했을 때 부모는 심폐소생술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강한 압박으로 인해 여린 몸이 고통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 대신 죽는 순간까지 아이를 안아주며 “사랑한다”, “늘 널 기억하며 살게”, “이 세상에 조금만 더 있다 널 만나러 갈게”라고 속삭였다. 황 간호사는 “이 같은 이별의식은 부모와 배우자, 자식, 형제자매, 친구 등 사랑하는 모든 사람을 잃었을 때도 이뤄져야 한다”며 “그래야 남겨진 사람들도 아픔을 잘 이겨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지은 smiley@donga.com·임현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