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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와 용기를 전하는 종교인 릴레이 인터뷰]“자비의 대상은 바로 내 앞의 당신”

입력 | 2016-01-15 03:00:00

<1> 이준성 약현성당 주임신부




《 ‘미움받을 용기’가 지난해 내내 베스트셀러 1위를 놓치지 않았다. 그만큼 팍팍한 우리 사회에서 위로를 받고 용기를 내는 일이 쉽지 않다는 얘기다. 힘들고 지친 사람들, 불확실한 미래가 두려운 사람들이 많을수록 마음을 다잡아 주는 종교의 역할이 크다. 용기와 위로를 주기 위한 종교인들의 조언을 들어본다. 》

이준성 신부 뒤로 국내에서 명동성당 다음으로 결혼식을 많이 하는 약현성당 본당이 보인다. 그는 “주례를 설 때 ‘배우자의 결점은 싸움의 원인이 아니라 사랑의 이유여야 합니다. 완벽한 존재라면 왜 사랑을 합니까. 부족하고 모자라기 때문에 그걸 메우기 위해 사랑이 필요합니다’라고 당부한다”고 말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4년 방한 때 서소문 성지를 참배하기 위해 차를 타고 들어오시는데 바쁜 일정 때문인지 굉장히 피곤해 보이셨어요. 그런데 차에서 내리자마자 억지 미소가 아닌 정말 환한 미소를 보이며 손을 흔드셨죠. 그때 ‘교황의 미소 하나도 신도들을 기분 좋게 하기 위해 마음에서 나오는 노력이구나’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교황이 광화문광장 시복식에 앞서 찾은 곳이 서울 중구 중림동 약현성당이 관리하는 서소문 성지였다. 이곳은 조선시대 천주교 박해로 수많은 신도가 처형된 장소로 그중 44명이 천주교 성인으로, 27명은 교황에 의해 복자로 선포된 한국 최대의 순교 성지다.

당시 교황을 맞이했던 약현성당 이준성 신부(50)를 최근 성당 사제관에서 만났다. 이 신부는 1995년 사제 수품 후 명동성당 보좌 및 부주임 신부, 서울대교구 일반교육사목부 담당신부를 거쳐 약현성당 주임사제를 2012년부터 맡고 있다.

그는 ‘무관심’을 우리 사회 공동체의 가장 큰 적으로 꼽았다. 무관심이 서로 간에 벽을 쌓게 하고 불신을 낳아 결국 적대시하게 된다는 것이다.

“교황께서도 새해 초 ‘무관심의 바다에서 자비의 섬이 되자’고 당부하셨어요. 무관심으로 소외된 사람들은 관심을 끌고 싶어 극단적 행동을 저지를 수 있거든요. 그것이 상승작용을 일으켜 살인 테러 등 더 큰 사태로 번지는 거죠. 우리가 ‘자비의 섬’이 되면 그런 범죄가 크게 줄 겁니다.”

우리가 무관심해지는 것은 “관심을 가지면 불편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 신부의 진단이다.

“위안부 소녀상만 해도 그래요. 일본이 소녀상을 치우고 싶은 건 한국인과 피해자 할머니에게 사실은 무관심한데 소녀상을 보면 자꾸 떠오르니까 불편해서 그런 거죠. 일본이 조금만 관심을 갖고 있다면 소녀상이 왜 불편하겠어요. 소외된, 좌절한, 피해를 입은, 가난한 이들에게 관심을 갖는 것은 불편함을 극복하는 일이에요.”

그런데 실제론 욕심인데 관심으로 착각하는 게 큰 병이라는 점도 언급했다. 특히 기성세대가 이런 오류를 자주 저지른다는 것.

“부모들이 청소년 자녀들에게 ‘우리가 이만큼 해줬는데…’라고 하지만 자녀에게 필요한 관심이 아니라 부모의 욕심에서 비롯된 게 많아요. 19세기 중반 이탈리아에서 살레시오회를 설립한 돈 보스코 성인(1815∼1888)의 말처럼 사랑을 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요. 상대에게 느껴지는 사랑과 관심을 주는 한 해가 됐으면 합니다.”

최근 흙수저 논란에 대해선 사회의 평가 기준이 너무 획일적인 것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다양한 능력과 성격의 젊은이들을 성적과 재산 등 극소수의 기준만으로 평가하다 보니 자포자기하다가 결국 울분을 터뜨린다는 것이다.

“기성세대는 젊은이에게 ‘노력하면 되는데 노력 안 한다’고 질책합니다. 하지만 1등이 아니면 ‘이게 부족하다’고 획일적으로 평가해온 사회 분위기 때문에 젊은이들은 자존감이 낮아져 ‘노력해도 안 된다’는 식으로 생각하게 되는 거죠.”

올해는 2000년 대희년 이후 15년 만에 맞는 천주교 자비의 희년. 약현성당은 평소 열지 않는 성당의 북문을 2월부터 상징적으로 열 예정이다.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 ‘악마는 사랑은 추상적이고 미움은 구체적이길 원한다’는 구절이 나와요. 우리는 사랑(자비)은 구체적으로, 미움은 추상적으로 해야죠. 자비의 대상은 바로 내 앞에 있는 당신입니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