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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전하는 방식은 변해왔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아”

입력 | 2016-01-15 03:00:00

[주목!2016 문화계 창조인]<5> 이창주 빈체로 대표




이창주 빈체로 대표의 성공 비결은 대중성과 예술성의 적절한 조화다. 이 대표는 “팬의 취향에 맞추는 것이 중요하지만 너무 시류만 좇는 건 경계한다”고 말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 “살아남기 위해서 애썼습니다.” 의외의 대답이었다. 빈체로는 국내 클래식 공연의 흐름을 주도하는 공연기획사다. 1995년 문을 연 뒤 20년 이상 해외 유명 오케스트라와 음악인을 소개하고 발굴했다. 12일 서울 서초구 사무실에서 만난 이창주 대표(62)는 성공 비결에 대해 “생존을 위해 노력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처음부터 클래식 공연 기획을 사업이라 생각하기보다 천직으로 생각했다. 이 일을 평생 하려면 살아남는 것이 우선이라고 여겼다”고 말했다. 》

지난해 그는 굵직한 공연을 유치했다. 베를린 방송교향악단, 로열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 백건우&드레스덴 필하모닉, 빅토리아 물로바 & BBC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정명훈 &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같은 공연이 클래식 팬의 열띤 호응을 받았다.

빈체로는 클래식 공연계의 ‘큰손’이다. 하지만 그는 “우리가 그렇게 영향력이 있을까 의아한 생각부터 먼저 든다”며 멋쩍은 웃음과 함께 손사래를 쳤다.

그는 일본을 제치고 세계 유명 음악인과 오케스트라의 아시아 첫 공연도 여러 차례 성사시켰다. 비결은 ‘신뢰’였다. “한 번이라도 함께 일한 다음에는 상대방이 신뢰를 보낼 정도로 열심히 했어요. 그 신뢰가 쌓여 해외에서도 인정해 주는 기획사가 된 것 같아요.”

그가 계속 성공 가도를 달린 것은 아니다. 1997년 외환위기 때는 직원을 반으로 줄였고, 2008년 금융위기 때는 공연 지원을 약속한 기업들의 후원이 줄면서 큰 어려움을 겪었다. 음악성을 둘러싼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방황하기도 했다.

“초창기에는 제가 보여주고 싶은 공연을 소개하다 실패를 맛봤어요. 팬의 취향과 선호를 알고 맞추는 것이 중요하죠. 다만 너무 시류만 좇아 공연이 인기 위주로 가는 것은 경계해야죠. 정체성을 잃지 않는 선에서 대중성과 예술성을 조절하는 것이 기획의 어려움 같아요.”

그는 또 클래식의 본질을 사랑에 비유하며 “사랑을 전하는 방식은 계속 변해 왔지만 사랑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100개가 넘는 공연을 유치하면서 그는 많은 음악인을 만났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음악인은 누구일까. 그는 망설임 없이 피아니스트 백건우를 꼽았다. “백건우는 진정한 음악인으로서 경외감까지 들게 만들어요. 어떤 음악인에 대한 기대감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떨어지는 경우가 많아요. 반면 백건우는 계속 기대감을 높이는 흔하지 않은 음악인이에요.”

올해 빈체로가 기획한 공연들은 팬들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하다. 3월 12일 세계적인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를 비롯해 최정상급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와 프라하 방송교향악단(10월 20일), 세계적인 지휘자 헤르베르트 블롬슈테트와 밤베르크 교향악단(10월 26일) 등이 한국을 찾는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블롬슈테트와 밤베르크 교향악단의 호흡이 기대된다. 몇 년 전부터 이 조합의 공연을 유치하려고 노력했을 정도로 만전을 기했다”고 밝혔다.

빈체로는 이탈리아어로 ‘승리’를 뜻하지만, 그가 기획자로 21년간 걸어온 길이 항상 승리의 길은 아니었다. 그래도 그는 미소를 지었다. “이 시대의 진정한 음악인들과 함께할 수 있어서 행복했고 계속 행복하고 싶어요. 물론 그러려면 끝까지 살아남아야죠.”

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