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휴게실 없어 쩔쩔매고… 엄마까지 스트레스”
《 어린 아이를 직접 키우는 아빠들이 점점 늘고 있습니다. 유모차를 번쩍 들어 트렁크에 착착 접어 넣고, 기저귀 가는 일도 무리 없이 해내곤 하죠. ‘슈퍼맨이 돌아왔다’, ‘아빠를 부탁해’ 등 TV 프로그램도 큰 인기를 얻으며 ‘아빠도 육아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날로 퍼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육아는 여성의 몫’이라는 편견은 여전합니다. 남성이 육아휴직을 내려면 눈치가 보이고, 기저귀 교환대 없는 남자 화장실이 더 많습니다. 육아하는 아빠들을 만나 아이를 기르는 기쁨과 고충을 들어 봤습니다. 》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다섯 살 아들 이호가 올해 유치원에 입학원서를 냈어요. 보통 여러 곳에 원서를 내기 때문에 추첨일엔 아빠, 엄마, 할머니 등 온 가족이 출동하지요. 제 번호가 원장선생님 입에서 불릴 때, 뭔가 쭉 내려가는 듯한 기분이 들면서 한숨이 훅 나오더군요. 평일엔 직장 일로 육아에 많이 참여하지 못해요. 하지만 저녁식사 후 이호와 목욕하는 것, 옷을 갈아입히는 동안 장난감 정리를 하는 것, 잠들기 전 이부자리에서 놀아주는 것 정도는 매일 하려고 노력합니다.(석현수·37·직장인)
―‘아빠가 나서면 아이가 다르다’, ‘엄마만 느끼는 육아 감정’, ‘엄마 vs 엄마’라는 아빠 육아 관련 책을 썼어요. 카카오TV에서 ‘주옥같은 육아썰전’이라는 생방송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고요. 아이의 성(性), 아이들 치아 관리를 다뤘어요. 방송 중 채팅을 통해 실시간으로 문답이 가능하다 보니 시청자들 반응이 좋더라고요. 시간이 없는 아빠들을 위해 ‘주말에 육아하는 아빠 모임’도 만들었어요. 아빠 자신이 아이를 더 사랑할 수 있게 된다는 점, 그리고 아이도 아빠를 더 사랑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이 아빠 육아의 가장 큰 장점이고 육아의 맛이랍니다.(정우열·37·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방송인)
“아빠여서 행복해요. 아빠여서 더 잘해요”
―제가 자라면서 본 아버지의 모습과 현시대가 원하는 아빠상이 다르다고 생각해요. 성공보다 가족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났죠. 움직임이 큰 놀이를 하기에 아빠가 엄마보다는 좀 더 수월해요. 타고 오르기, 목말 태우기, 간지럼 피우기 등 몸으로 부딪치며 살을 맞대는 모든 놀이가 그래요. 이런 즉흥적이고 에너지 넘치는 놀이로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해 주면 아이들이 스트레스를 더 잘 다스릴 수 있게 된다는 연구 결과도 나와 있어요. 은행 사내 커플인데 아내는 공동 육아를 시스템화해 주길 원했어요. 퇴근 후 집안일을 분담하고, 33개월 된 아들에게 책을 읽어 주고 체온을 나누며 놀아 주려고 노력했지요. 아 참, 저는 올해 여름 태어날 둘째를 위해 3월에 태교지도사 자격증 시험도 봐요.(강희철·37·IBK기업은행 직원)
―총각 때부터 아이들을 워낙 좋아했어요. 제가 하도 안고 다녀서 아내가 “아기 띠를 좀체 쓸 일이 없었다”고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죠. 5년 전, 아이들과 문화센터에 다녔어요. 그땐 아빠가 문화센터에 아이들을 데리고 가면 다들 신기하게 생각했습니다. 같이 수업 듣는 엄마들이 나중에 와이프에게 제 직업부터 해서 여러 가지를 조심스럽게 물어봤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그때 직장인이었어요.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다들 기피하는 새벽 근무 부서에 일부러 자원했죠. 직장일로 힘들었다고 해서 아빠가 온 주말을 쉬어 버리면 아이에게 주중에 시달린 엄마는 쉬지 못해요. 주말 중 하루라도 아빠가 아이와 놀아 준다면 엄마는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어요. (조현상·40·개인사업)
만만찮은 아빠의 고충
엄마의 스트레스도 늘어
―저는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휴직의 염려나 진급에 대한 걱정이 없지만 제가 여성가족부 ‘꽃보다 아빠’ 캠페인이나 보건복지부 ‘100인의 아빠단’에 멘토로 참여하면서 겪은 경험은 다릅니다. 대부분의 아빠는 연예인, 프리랜서, 공무원 아빠들이 아니라 기업체에 다니고 있는 분들이지요. 휴직하고 육아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려운 형편이다 보니 육아에 대한 글을 직접 쓰시거나 목소리를 낼 기회도 적습니다. 평범한 직장 생활을 하면서 육아를 감당하는 아빠가 책을 쓰거나 글을 쓰고 있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마음이 없어서라기보다 여건이 되지 않습니다. 육아와 관련해 발언하고 있는 대부분의 아빠는 소위 ‘평범한 아빠’가 아닙니다. 아빠 육아가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방증이죠.(권영민·37·작가·철학자)
―아이 셋을 낳고 사업 준비하느라 밖에 있을 때가 잦아요. 남편은 집에서 번역 일을 하고요. 남편이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하겠다며 내내 밖으로 도니? 나는 육아도 하는데’라며 빈정거릴 때 마음이 상해요. ‘육아하는 아빠는 특별한 아빠’라는 생각이 깔려 있는 거죠. 원래 아빠의 영역이 아니라 여기는 걸 하고 있으니 대단하고 특별한 기여를 하고 있는 것 같나 봐요. 사실 남편이 있기에 마음 놓고 일하는 것도 맞지만 솔직히 서운해요. ‘걱정 마. 아이들은 내가 볼게. 당신은 지금 하는 일을 잘해’라고 말해 준다면 좋겠어요.(성지은·가명·34·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