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북부 칼레의 난민캠프에서 만난 4살짜리 난민 소녀의 불법 밀입국을 도와주었던 영국인에게 프랑스 법원이 14일(현지 시간) 무죄를 선고했다.
전직 군인인 영국인 로브 로리 씨(49)는 런던 북부 귀즐리에서 카페트 세탁업을 하며 네 아이를 키우던 평범한 가장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9월 언론을 통해 터키 해안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세 살배기 시리아 난민 아이 알란 쿠르디의 사진을 접한 뒤 삶이 바뀌었다. 로리는 자신의 일을 그만두고 프랑스 칼레항 부근과 뒹게르크 등을 오가며 난민 쉼터를 짓는 등 봉사를 시작했다.
그는 ‘정글’로 불리는 열악한 난민촌에서 만난 아프가니스탄 난민 레자 아마디로부터 부탁을 받았다. 자기 대신 네 살배기 딸 ‘브루’(마하르 아마디의 애칭)만이라도 구해줘 영국 북부에 사는 친척에게 맡겨달라는 부탁이었다. 그는 몇 번이고 거절했지만 난민촌의 참혹한 환경 속에서도 환하게 웃는 아이를 외면하지 못했다. 결국 로리는 브루를 자신의 승합차에 숨긴 채 페리선을 타고 영국에 들어가려다 경찰에 적발됐다. 에리트레아 난민 2명이 그의 승합차에 몰래 타고 있다가 적발되면서 브루도 들켰다. 경찰이 끌어낸 아이는 몸을 웅크린 채 곰 인형을 가슴에 안고 있었다.
로리는 결국 영국에 불법 밀입국을 도운 혐의로 프랑스 법정에 섰다. 유죄가 인정될 경우 최대 징역 5년 또는 3만 유로(약 3900만원)의 벌금을 물게 될 상황이었다. 안타까운 소식이 알려지자 로리의 페이스북에는 그를 ‘영웅’이라 부르며 무죄를 청원하는 이들이 몰렸다. 로리는 이 같은 반응에 “영웅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 사람들을 구한 오스카 쉰들러나 마틴 루터 킹이지, 나 같은 사람이 아니다”라며 “그저 자유를 잠깐 담보 잡힌 전 세탁소 주인일 뿐”이라고 고개를 저었다.
프랑스 법원은 14일 불법 밀입국 협조 혐의와 관련해 로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법원은 난민 소녀를 승합차 좌석이 아니라 차 뒤에 숨겨 생명을 위태롭게 했다면서 1000 유로의 벌금을 부과했다.
파리=전승훈특파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