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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新명인열전]“요리는 내 운명… 제주 향토음식 전국에 알려야죠”

입력 | 2016-01-18 03:00:00

<34> 제주 첫 조리기능장 문동일 셰프




조리기능장 제주1호인 문동일 셰프가 자신의 이름을 내건 레스토랑 주방에서 요리를 하고 있다. 제주지역에서 생산한 신선한 재료를 고집하며 건강한 밥상을 만들고 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셰프(chef·주방 최고책임자) 전성시대다. TV 프로그램에 ‘쿡방(요리 방송)’과 ‘먹방(먹는 방송)’이 넘쳐나고 셰프들이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맛집 인증샷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는 게 일상이다. 올해도 요리 관련 프로그램, 책 등의 인기는 여전할 듯하다.

식도락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항상 삶에 녹아 있는 주제다. 가난한 시절에는 먹는 행위 자체가 중요했지만 지금은 ‘무엇을 어떻게 잘 먹느냐’가 화두다. 제주에서도 음식 문화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향토음식이 ‘건강 밥상’으로 새롭게 조명되면서 소비자 입맛에 맞춰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 향토음식의 재발견

14일 오후 제주시 애월읍 하귀리 ‘문동일 셰프 레스토랑’. 격납고 형태의 이색적인 건물에 아담한 테이블 등으로 꾸며졌다. 녹차칼국수 면발은 쫄깃하고 들깨가루가 들어간 야채국물은 자극적이지 않고 깔끔했다. 제주산 흑돼지로 요리한 떡갈비는 겉은 바삭하고 안은 육즙이 그대로 살아있다. 감귤과 콜라비, 방울양배추(방울토마토 크기의 양배추)를 된장으로 버무린 반찬은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싱싱함과 상큼함이 가득했다.

문동일 셰프(56)는 음식에서 신선한 재료와 그 신선함을 최대한 살려주는 최소한의 양념이 가장 중요하다고 몇 번이나 강조했다. 문 셰프는 1994년 제주에서는 처음으로 조리기능장이 됐다. 전국에서는 9번째다. 2003년부터 2010년까지 제주국제음식축제 조직위원장, 추진기획단장 등을 연달아 맡았다. 음식축제에서 향토음식으로 과거, 현재, 미래를 꾸미는 과정을 통해 제주 음식이 변방의 하찮은 음식이 아니라 국제화가 가능하다는 점을 알려주고 싶어서였다.

“제주도 하면 회, 돼지고기 정도만 떠올리지만 사시사철 자연산 재료가 계속 공급됩니다. 자연에서 난 좋은 재료를 쓰면 조금만 간을 해도 맛있어요. 그런 음식이 몸에도 좋습니다. 제주 향토음식에는 매운 고춧가루를 잘 넣지 않아요. 된장을 기본으로 하는데 된장만 있으면 물회가 뚝딱 만들어집니다.”

문 셰프는 국제음식축제와 제주관광음식연구소를 운영하고 케이블TV 음식 경연 프로인 ‘한식대첩3’에 출연하면서 제주산 재료로 만든 보양식을 선보였다. 청고사리 육개장, 전복만두, 옥돔뭇국 등이다. 톳(해조류)보리밥, 감저(감자)밥, 전복김치, 제주빙떡 5종, 한치말이, 감귤과줄, 당근정과, 깅이(게)범벅, 쉰다리(보리막걸리식초) 등 섬 향기가 물씬한 요리를 알리기도 했다.

향토음식에 대한 애정은 2003년 초당대 산업대학원 조리과학과 석사학위 논문인 ‘제주향토음식 표준화 방안’에 담겨 있다. 향토음식점을 운영하려는 사람들에게 경영 컨설팅도 했다. 2011년 제주그랜드호텔(현 메종글래드제주) 입사 후 식음료 매출을 100억 원에서 2년 만에 158억 원으로 끌어올렸고, 서울 여의도 글래드호텔, 홀리데이인 익스프레스 호텔 등의 식당 메뉴와 주방 설비 등을 감수했다. 방어요리 꾸지뽕소스, 녹차칼국수 등 음식 관련 2건의 특허도 냈다.

○요리는 내 운명

문 셰프는 전남 보성이 고향이다. 어릴 때 종가 며느리였던 어머니의 손맛을 보려고 부엌을 드나들다 아버지에게 꾸지람을 들은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요리가 마냥 신기하고 좋았다.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동네 선배가 일하는 부산의 호텔 주방에 발을 들여놓았다. 어린 마음이었지만 요리 기술이 있으면 평생 먹고사는 데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주방 옆 골방에서 지내며 오전 6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설거지, 야채 다듬기 등 허드렛일을 1년 넘게 한 끝에 불 앞에 설 수 있었다. 1978년 조리사 자격증을 딴 뒤부터 자신감이 생겼다. 1984년 제주를 여행한 것이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당시 제주그랜드호텔 주방에서 일하던 선배의 제안을 받고 그대로 눌러앉았다.

호텔 요리가 일상이 될 즈음 고민이 생겼다. 식음료 분야 관리자들 대부분이 전문대 졸업 이상의 학력이었다. 승진을 위해서는 학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동료에게 숨긴 채 학원을 다니며 고졸 검정고시를 준비했다. 공부는 힘들고 피곤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대학 입시 자격을 갖췄지만 당장 입학할 수 없었다. 당시 제주 지역 대학에 조리과가 없었기 때문. 제주한라대 학장을 설득해 조리과를 만들었다. 문 셰프는 야간대학 1회로 졸업한 그 과에서 시간강사로 활동했다. 실기를 가르칠 전문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끝없는 도전

호텔 주방 총책임자, 조리과 겸임교수, 음식점 컨설팅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던 문 셰프는 한순간 슬럼프에 빠졌다. 직장과 학교에서의 스트레스가 컸던 탓이었다. 탈출구가 필요했다. 아내(52)와 직장 동료의 반대가 있었지만 본고장에서 요리를 배우며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싶었다. 6개월 동안 준비한 끝에 호텔에 사표를 내고 1996년 홀연히 프랑스 파리로 떠났다. 그가 선택한 학교는 130년 전통의 요리 전문대인 ‘르 코르동 블뢰’.

아내와 어린 딸, 아들은 한 달 뒤 파리에서 합류했지만 파리 생활은 가시밭길의 연속이었다. 말이 통하지 않아 슈퍼마켓에서 어떻게 사야 할지 몰랐고 강의 내용은 도통 알아들을 수 없었다. 안정된 생활을 포기하고 새로운 삶에 도전한 것을 후회하며 눈물을 삼켰다. 요리사의 길을 계속 가야 할지 고민하다 마음을 다잡았다. 파리 유학에서 음식에 와인을 쓰는 법을 알았고 그날그날 공급된 신선한 고기와 생선, 야채 등을 고집하는 것에 놀랐다. 향신료는 최소로 썼다. 육고기에는 육즙으로 만든 소스, 생선에는 생선뼈로 만든 소스 등 원재료의 맛을 살리는 소스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죽순, 새싹 등 어린 야채를 중시하는 것도 배웠다. 2년간의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뒤 호텔에서 다시 근무하면서 경영 컨설팅, 향토음식 개발 등에 노력을 기울이다 지난해 9월 자신의 이름을 내건 레스토랑을 열었다.

“제주에서는 신선한 재료에 공기, 물, 소금, 된장만 있으면 아주 훌륭한 음식이 만들어집니다. 과거 조선시대 제주목사, 해녀 등이 먹었던 음식을 현대에 맞게 재해석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앞으로 제주산 식재료와 음식을 전국에 공급하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습니다.”



▼역대 대통령 한끼 식대 4만원 지불… 호텔측선 한마디도 이의 제기안해▼

■ 문 셰프가 들려주는 ‘요리 비화’

문동일 셰프는 역대 대통령들이 제주를 방문했을 때 요리에 얽힌 비화를 들려줬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1988년 제주그랜드호텔에서 퇴임 기념 만찬행사를 열 때 문 셰프가 음식을 차렸다. 전 전 대통령이 묵는 객실에 문 셰프만 들어가 음식을 만들어 식탁에 올렸다. 전 전 대통령은 아침에 자몽에 꿀을 섞은 음료를 시작으로 샐러드, 달걀을 즐겼고 성겟국, 옥돔미역국, 갈치구이 등 여러 음식을 가리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제주를 방문했을 때에도 문 셰프가 음식을 만들었다. 당시 경호가 삼엄해 대통령 식탁에 음식이 오르기까지 2, 3차례 검사를 거쳐야 했다. 공관 행사에서는 대통령 식기를 따로 소독해서 음식을 담았다. 노 전 대통령은 2인분의 다금바리 회를 혼자 먹을 정도로 식성이 좋았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다소 특이한 식사 습관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식사를 겸한 행사가 있을 때면 사전에 전속 요리사가 만든 음식을 먹었다. 행사에서 말을 하다 보면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하기 때문에 미리 속을 챙겼던 것이다. 5, 6공화국 당시 청와대가 제주에서 지불한 대통령의 한 끼 음식값은 4만 원이었다. 실제로는 8만 원 이상이었지만 호텔 측에서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을 것이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