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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균 기자의 교육&공감]대학 개편도 좋지만 근시안은 더 위험

입력 | 2016-01-18 03:00:00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김희균 기자

4년 전 조선 분야 마이스터고에 입학한 A 군은 성실히 노력하면 또래보다 빨리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같은 세계 3대 조선소에서 일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3년 내내 학과 공부와 자격증 취득에 매진하며 상위권을 유지했다. 하지만 졸업을 앞둔 A 군은 수차례 고배를 마신 끝에 가까스로 조선과 무관한 외국계 회사에 입사했다. 최악의 청년 실업난 속에서 취업에 성공한 것만으로도 기뻐할 일이긴 하지만, 남보다 일찍 진로를 정하고 그 분야에만 매달린 시간을 생각하면 허무함을 떨칠 수 없다.

이명박 정부는 단기간에 많은 교육 정책을 쏟아내 현장에서 감당하기 힘들다는 반응이 많았다. 하지만 개중에는 호응을 얻은 정책도 있다. 학교와 기업이 손을 잡고 기술 전문가를 키우기 위해 도입한 마이스터고가 그것이다. 2013년 첫 졸업생을 배출한 이래 마이스터고의 평균 취업률은 90%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일찌감치 진로를 결정하는 것은 양날의 검과 같다. 마이스터고에 진학하는 최대 이유가 ‘취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특히 그렇다. 해당 분야의 업황에 따라 취업 시장이 직격탄을 맞기 때문에 위험 부담이 도사리고 있다. A 군은 조선업계의 활황을 보며 학교를 택했다. 하지만 최근 조선업계가 사상 최악의 적자를 기록하면서 대기업은 물론이고 하도급 업체 취업까지 꽁꽁 얼어붙었다. A 군 친구의 경우 3학년 때 취업을 전제로 현장실습을 하던 회사가 하루아침에 문을 닫았다. 이런 여파로 2016학년도 마이스터고 입시에서 조선 분야 학과는 지원율이 떨어지고, 일부에서는 전례 없는 미달 사태까지 빚어졌다.

조선업 침체 원인 중 하나는 해양 플랜트 사업이다. 정부는 고부가가치인 해양 플랜트로 중국의 추격을 따돌릴 수 있을 거라 예측했고, 4년 전 지식경제부는 2011년 1400억 달러 규모인 세계 해양 플랜트 시장이 2030년 5000억 달러 규모로 팽창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내놓았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해양 플랜트 수주 실적은 2012년 218억 달러로 정점을 찍은 뒤 2014년 54억 달러까지 고꾸라졌다. 지난해 조선 3사 모두 해양 플랜트 부문에서만 수조 원의 손실을 냈다.

A 군을 보며 정부가 올해부터 시행하는 프라임(PRIME·산업 연계 교육 활성화 선도대학) 사업이 떠올랐다. 산업 수요에 맞춰 취업 중심으로 학과를 개편하는 대학에 예산을 몰아주는 사업이다. 지난해 말 기본계획이 확정된 이후 대학마다 연간 50억∼300억 원을 받기 위해 학과를 개편하느라 겨울방학 내내 몸살을 앓고 있다.

개편 지침은 단순하다. 취업이 안 되는 학과는 없애고, 취업이 잘될 만한 학과를 늘리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대학들은 인문계 학과를 줄이고, 이공계 학과를 늘리려 하고 있다. 하지만 산업 수요는 단순하지 않다. 영원한 ‘조선 강국’일 줄 알았던 우리나라에서 지난해 조선 3사에서만 수천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2000년대 후반 대학들은 산업 수요를 반영한다며 경영학과의 몸집을 불렸지만 불과 몇 년 뒤 시장에서는 공급 과잉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2010년 이후 대학가에는 바이오, 복합, 정보기술(IT) 등 유행을 좇은 학과 신설 붐이 일었지만, 프라임 사업을 앞두고 이런 학과들이 구조조정 타깃이 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향후 10년간 공학계열 인력이 21만5000명가량 부족할 거라는 전망을 내놨다. 하지만 기술 변화 속도가 무섭게 빠른 상황에서 2020년대 산업계 판도는 감히 예측하기 어렵다. 대학교육연구소가 최근 각국의 공대 현황을 비교해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2005년 이후 우리나라 4년제 대학의 공대 정원은 꾸준히 늘었지만 취업률은 오히려 떨어졌다. 미국과학재단의 2014년 보고서를 보면 우리나라의 공학 전공자 비율은 23.9%로, 기술 강국인 일본(16.6%), 독일(13.3%), 인도(6.2%), 미국(4.5%)에 비해 훨씬 높다.

시대 흐름에 맞게 대학을 혁신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단기적인 산업 수요 전망에 따라 겨우 서너 달 만에 학과를 뜯어고치는 방식은 부작용이 우려된다. 한 공대 교수는 “대학이 현재 산업 수요를 반영해 학과를 만들고 최소 4년 뒤 졸업생을 배출해봤자 뒷북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고등교육 경쟁력이 높은 미국이나 영국의 대학들은 기초 전공의 틀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면서 융합 교육을 이끌어 나가고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