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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구단에 부는 ‘세이버메트릭스’ 열풍

입력 | 2016-01-19 05:45:00

NC 다이노스 박석민. 사진제공|NC 다이노스


■ 프로야구도 통계가 경쟁력이다

넥센 통계수치 전략적 활용 성공적 사례
NC도 WAR자료 토대로 FA박석민 영입
감독의 리더십 손상 등 우려 섞인 지적도


“전력분석 회의 등을 거쳐 데이터 분석까지 면밀히 진행했을 때 박석민(31)의 가치가 크다고 판단했다. WAR 등 분석결과, 박석민은 국내 야수 중 최정상급 성적을 최근 수년간 꾸준히 내고 있다. 4∼5승을 더 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NC 배석현 단장이 지난해 11월 30일 프리에이전트(FA) 3루수 박석민을 4년 총액 96억원에 영입한 뒤, 꺼낸 소감이다. KBO 역사상 선수 영입 시, ‘WAR(Wins Above Replacement·대체선수 대비 승리 기여도)’라는 세이버메트릭스(Sabermetrics) 용어가 등장한 최초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세이버메트릭스는 야구를 통계학적·수학적으로 분석하는 방법론이다. 풀어쓰면 NC는 박석민은 대체선수(리그에서 동일 포지션의 평균치 가상 선수)를 기용하는 것에 비해 한 시즌당 4∼5승을 더 가져다 줄 수 있다는 통계 데이터를 추출했고, 이 수준이면 연평균 24억원을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우승을 할 수 있고, 팬을 더 끌어 모을 수 있다면 결코 오버페이가 아니라고 계산했다는 의미다. NC의 박석민 영입은 이제 KBO 구단들의 선수 영입이 야구인의 직관으로만 이뤄지지 않는 시대가 왔다는 상징적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전력분석의 시대를 넘어 통계분석의 시대로

NC처럼 드러내놓고 말하지 않았을 뿐이지 숫자로 야구의 미래를 예측하는 세이버메트릭스가 KBO에 침투한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NC는 이미 이 분야 전문가를 창단 시절부터 프런트에 보유하고 있었다. 또 공학도 출신인 넥센 이장석 대표이사도 어지간한 전문가를 능가하는 실력자다. 야구단 수장이 합리성을 극한까지 추구하는 팀 성향상, 프런트 내부적으로도 통계분석 전문가를 두고 있다.

후발주자인 신생구단에서 세이버메트릭스가 혁신의 아이콘처럼 성과를 내기 시작하자 기존의 대기업 기반 야구단들도 따라가는 추세다. SK도 2015시즌을 앞두고 전략기획팀을 신설해 수치에 근거한 팀의 방향성을 설계하고 있다. KIA 역시 올해부터 운영팀과 스카우트팀에서 세이버메트릭스를 학습하고 있다. LG는 선수 연봉 책정에 ‘윈 셰어(Win Share·승리 기여도)’라는 통계자료를 동원하고 있다.

세이버메트릭스가 ‘야구 민주화’를 불러온다?

세이버메트릭스의 가장 큰 흡인력은 야구방망이 한 번 잡아보지 않은 비(非)야구인이 평생을 야구장에서 산 야구인들보다 합리적 판단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도구처럼 기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야구를 보는 새로운 관점은 메이저리그에서 태동했는데 이 분야의 시조로 추앙받는 빌 제임스가 1977년 발간한 ‘야구 개요’가 시작이었다. 제임스의 통계 해석이 현실 야구에서 만개한 결정적 계기는 빌리 빈 단장의 오클랜드 성공신화를 통해서였다. 그 혁신 스토리를 묘사한 마이클 루이스의 ‘머니볼’은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됐고, 브래드 피트 주연 영화로도 제작됐다. 어느덧 ‘머니볼’ 야구는 하나의 아이콘이 됐고, OPS(출루율+장타율)나 RC(득점생산력)는 더 이상 생소한 항목이 아니다.

KBO에서도 2015년 MVP(최우수선수)로 박병호(넥센·현 미네소타)가 아닌 에릭 테임즈(NC)가 선정된 것은 하나의 사건이었다. 고전적 가치 최우선순위에 있는 홈런왕과 타점왕을 차지한 박병호가 (40홈런-40도루의 후광이 작용했겠지만) OPS 1위인 테임즈에게 밀렸기 때문이다.

● 현장 야구인들의 심중은?

그러나 아직까지 통계분석이 KBO의 주류는 아니다. 이 분야의 선두주자인 NC조차 김경문이라는 카리스마적 감독이 버티는 한, 세이버메트릭스를 전면에 내세우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 다행스러운 것은 WAR를 동원하든, 김 감독 특유의 ‘매의 눈’을 따라가든 박석민은 NC에 필요한 선수라는 결론이 일치한다는 지점이다.

다만 감독의 영향력이 보편적으로 메이저리그보다 훨씬 큰 KBO의 성향상, 통계야구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힘을 얻는다. 이런 숫자에 의지해 전략, 전술을 짜다간 감독의 리더십이 손상될 위험성이 높기 때문이다. 2014년 롯데의 몰락이 그랬다. 당시 사장은 프런트 핵심 인력을 끌어다 롯데를 한국의 머니볼 팀으로 만들려는 시도를 했다. 이런 일방통행에 야구인 출신 운영부장은 자존심을 걸고 막으려 했다. 롯데 프런트의 당시 내부불화는 이런 철학의 차이에서도 비롯된 일이었다.

A구단 프런트는 “의외로 통계분석 야구에 대한 현장야구인의 실제 반응은 부정적이지 않다”라고 전한다. ‘이기는 데 도움 된다면 무엇인들 참고를 못하겠느냐’는 것이다. 다만 그 난해함을 이해하지 못하기에 태생적 거부감이 작동하는 면이 있다.

세이버메트릭스에 정통한 B구단 프런트는 “아직 통계야구를 KBO에 일괄적으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유의미한 데이터를 뽑아내려면) 거기 들어가는 숫자가 일관돼야 하는데 언제나 환경이 동일할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결국 불완전한 인간이 하는 야구를 숫자로 치환하는 작업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편에서 야구계는 이제 투구추적시스템이나 포수의 프레이밍까지 수치화하는 등, 야구의 데이터화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 움직일 수 없는 현실이다.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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