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충만 세이브더칠드런 국내옹호팀장
얼마 전에는 동료가 이런 이야기를 들려줬다.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 4학년 아이가 담임교사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선생님이 학교 다닐 때는 선생님들이 막대기 들고 다니면서 애들 막 때렸다면서요?” 아이는 “우리 엄마도 학교 다닐 때는 그렇게 맞았대요”라며 마치 먼 나라의 신기한 이야기를 전하듯 하더란다.
새로운 세대가 자라나고 있지만 여전히 공포의 빨간 바지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최근 학생들이 빗자루로 교사를 때린 영상이 공개되고 가해 학생들이 구속되는 사건이 있었다. 사람들은 분노했다. 그 분노는 학생인권조례를 없애고 체벌을 부활시켜 교권을 확립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번져 갔다.
교사를 폭행한 아이들 역시 폭력에 감염되어 무감각해져 버린 환자는 아니었을까. 우리가 무심히 지나치지만 일상에서 벌어지는 무참한 폭력은 또 얼마나 많은가. “몇 대를 더 맞아야 정신 차릴래”라며 우는 아이의 엉덩이를 빗자루로 내려치던 아주머니, “네가 매를 벌었다”며 아내를 우악스럽게 몰아붙이던 남편, “숙제를 안 해왔으면 맞아야지. 대가리 박아”라며 내 머리를 책상에 놓고 당구채로 내려치던 고등학교 영어 선생님…. 요즘 아이들은 내가 목격하고 경험한 것보다 더 심하고 저열한 폭력을 겪었을는지도 모른다.
미국의 전염병 전문의 게리 슬럿킨은 폭력을 “전염성이 강한 사회적 질병”이라고 정의하면서 이를 막는 효과적인 방법은 대유행 이전 초기 감염을 감지 및 분리하여 번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하지만 우리는 가정에서부터 강자인 부모가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약자인 자녀에게 사랑을 빙자한 폭력을 가하는 초기 감염 상황을 충분히 막지 못하고 있다. 또 고등학교 3학년이 책을 읽으면 벌을 주고, 흰색 속옷만 입어야 하며, 춥다고 사복 외투를 입으면 감점을 당하는 폭력적인 학칙이 버젓이 학교에 존재하는 현실에서 폭력이 번지지 않기를 바라는 게 더 이상할 정도다.
스웨덴은 1979년 세계 최초로 아동에 대한 모든 종류의 체벌을 법으로 금지했는데, 나는 얼마 전 스웨덴 출신의 젊은 엄마에게 ‘아이를 때리지 않고 키우는 것이 어렵지 않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녀는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스웨덴은 사람을 때리지 않는다는 사회적 약속을 했다. 누구를 때려서 말을 듣게 한다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 내 선택지에는 없다”고 대답했다.
교사를 폭행한 아이들은 분명 잘못을 저질렀고 죗값을 치러야 한다. 하지만 학교, 가정에서 끊이지 않는 폭력적 사건의 반복을 막으려면 단죄에 그치지 말고 우리 사회의 폭력성을 먼저 돌아봐야 한다. 공포의 빨간 바지를 그리워할 게 아니라 폭력의 전염을 막는 든든한 저지선이 되어 줄 가정과 학교를 만들어야 한다. 행동의 선택지에 폭력을 아예 갖고 있지 않은 새로운 세대를 키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