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오은영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마땅히 어른들에게 보호받고 사랑받아야 할 아이들이, 어찌하여 이렇듯 말도 안 되는 엄청난 고통을 당하게 된 것일까. 어찌하여 우리는 이 작은 아이들조차 지켜주지 못한 것일까. 이런 우리가, 과연 진정한 어른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의 신년 화두는 ‘진정한 어른’이다. 사전상 ‘어른’은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라고 나온다. 그렇다. 어른은 책임을 지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진정한 어른이라면 기본적으로 약자는 보호할 줄 알아야 한다. 즉, 남의 집 아이건 우리 집 아이건 최소한 아이만큼은 절대적으로 보호하고 지키려고 들어야 어른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진정한 어른이질 못했다.
우리의 어른답지 못한 모습은, 이런 극단적인 사건에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아이를 키우는 가정에서도, 교육현장에서도, 사회적 분위기에서도, 정치권에서도 너무나 자주 보인다. ‘진정한 어른’은 아이 보호는 물론이고 조절능력이 잘 갖추어져 있어서 생각과 감정, 그리고 언행을 조심하고 욕구나 충동을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어느 정도 상황을 꿰뚫고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상황을 앞뒤 맥락에 맞춰서 문제를 잘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고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돌아보고 반성할 수도 있어야 하며 반성에서 끝나지 않고 실제 생활에 반영하여 바꿀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아이를 키우면서 혹은 가르치면서 많은 순간, 궁극적인 가치나 목적보다는 눈에 보이는 수많은 작은 목표에만 연연하여, 상황을 잘못 파악하고 양육이나 교육을 그르친다. 사회 전반에서도 찬찬히 상황을 파악하기보다 욱해서 폭언을 하고 폭행을 행사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뉴스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갑질 논란’ ‘분노 범죄’라는 말이 등장한다. 정치권은 더하다. 일단 늘 시끄럽다. 항상 싸우고만 있다. 그들은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는 듯하다. 누구를 위한 정책인지보다는 우리 쪽이 졌느냐 이겼느냐만 중요하다. 당연히 상대가 아무리 옳은 이야기를 해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우리 쪽 잘못이 확실해도 반성하고 고치려고 하지 않는 것이 기본이다. 나이만 보면 누가 봐도 어른이고도 남을 위치인데, 우리는 참 어른답지 못하게 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어느 사회나 어른이 어른의 모습이 아니면, 사회의 근간이 흔들리게 된다. 이들이 진정한 어른이 되지 않으면, 사회는 안전하고 건강하기 어렵다. 훌륭한 법과 제도만 있으면 그래도 가능하지 않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아무리 제도가 훌륭해도, 일상생활의 모든 것에 법의 잣대를 댈 수는 없다. 이것은 제도적인 안전망일 뿐이다.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개개인이 진정한 어른이 되는 것이다. 그래야 내가 행복할 뿐 아니라 우리가 궁극적으로 안전하고 행복해질 수 있다.
올해는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내가 어른인가?’ ‘나의 생각과 행동은 어른다운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다면 ‘어른다워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치열하게 고민해보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