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청년 리더]<17>P2P대출업체 ‘어니스트펀드’ 서상훈 대표
개인 간 거래(P2P) 대출업체인 어니스트펀드의 서상훈 대표는 정직한 금융을 꿈꾼다. 서울대 수석 졸업장을 들고 기업으로 가는 대신 “세상을 바꾸고 싶다”며 창업의 길에 뛰어들었다. 15일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어니스트펀드 사무실에서 서 대표를 만났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서 대표는 “인턴으로 좋은 회사도 다녀봤지만 재밌고 편하게 느껴지지가 않았다”며 “내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변화를 한번 일으켜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그는 졸업 후 미국 뉴욕으로 건너갔다. 벤처캐피털 컬래버레이티브펀드(Collaborative Fund)에서 잠시 일하며 투자와 사업 기회를 알아보는 안목을 키우며 창업을 위한 ‘근육’을 단련시켰다. 이 경험이 밑거름이 돼 지난해 2월 어니스트펀드를 창업할 수 있었다.
이 기법을 활용하면 은행 문턱을 넘지 못해 저축은행이나 대부업체에서 고금리 대출을 받는 사람들도 신용평가 결과에 따라 10% 내외의 금리로 대출을 받을 수 있다. 대출 자금은 개인투자자들로부터 받는다. 저금리로 은행 예·적금 이자가 1%대로 주저앉은 요즘, 투자자들에게 10%대 고수익을 낼 수 있는 투자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서 대표는 “34.9%에 육박하는 살인적인 고금리 대출과 물가상승률을 겨우 따라가는 투자수익률 사이의 모순을 해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정보기술(IT)과 금융을 접목해 대출받는 사람의 가치를 정직하게 판단하고 투자자에게는 건강한 투자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뜻을 담아 회사 이름에 ‘어니스트(honest·정직한)’란 표현을 넣었다.
“학창 시절 아버지가 하시는 사업이 잘 안 돼 풍족하게 살지 못했어요. 뼈 빠지게 고생하고, 여러 차례 실패한 끝에 겨우 이 자리에 왔어요.”
말끔한 외모에 서울대 경영대를 졸업해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금수저’라는 오해를 받곤 하지만, 서 대표는 자신을 ‘뼈수저’라고 말한다. 창업 후 1년간 지하방, 폐업한 카페를 전전하고 다른 회사 사무실에서 더부살이를 하며 눈칫밥도 먹었다. 그는 사무실을 6번이나 옮긴 얘기를 재밌는 추억마냥 툭툭 털어놨다. 사업 초기 은행 문턱을 넘지 못해 자금난에 시달렸다. 모아둔 돈도 다 쓰고, 지인들에게 돈을 빌리기도 했다. 밥 먹을 돈도 없었다. 10년 넘게 거래한 은행을 찾아갔지만 대출 신청서조차 써보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벤처사업가라는 명함 말고는 안정적인 수입도, 담보도 없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방식의 신용평가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는지 확인하려면 은행과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그가 롤모델로 꼽는 미국의 P2P 대출업체 랜딩클럽 역시 미국 내 대형은행인 웰스파고와의 협력을 통해 성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은행들은 낯선 제안을 하는 젊은 사업가에게 “학교는 졸업했느냐” “군대는 다녀왔느냐” “유사 대부업체 아니냐”며 의심부터 했다. 얕잡아 볼까 봐 일부러 ‘2 대 8’ 가르마를 하고 나이 들어 보이는 안경까지 쓰고 은행을 찾아간 적도 많았다.
서 대표는 “나와 동료들은 우리 아이디어에 대해 100% 확신했는데, 아무도 알아주지 못하는 게 불안했다”며 “하지만 오히려 그런 논쟁과 충돌의 순간에 기회가 있다고 믿었다”고 말했다. 앞날을 불안해하는 청년들에게도 같은 조언을 건넸다.
“‘왜 나를 알아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옳은 길로 가고 있는 거예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면 기회가 분명히 옵니다.”
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