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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용의 다른 경제]감독 대통령, 각본 부총리의 ‘노동개혁 드라마’

입력 | 2016-01-20 03:00:00


홍수용 논설위원

이 드라마의 제목은 ‘노동개혁이라 불리는 정치 도박’이다.

하이라이트는 박근혜 대통령이 이달 13일 대국민담화에서 “일자리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차선책으로 기간제법을 중·장기적으로 검토하는 대신 파견법은 받아 달라”고 야당에 촉구한 장면이다. 한국노총이 19일 노사정 대타협 파기 선언을 한 것은 박 대통령의 제안이 어떤 식으로도 받아들일 수 없는 정치적 외통수였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최경환 구상 일치

노동개혁 현안은 복잡하게 얽혀 있다. 기간제법, 파견법, 산재보상법, 고용보험법, 근로기준법 개정안에다 저성과자 해고와 임금피크제 도입을 위한 2개 지침 등 총 7가지나 된다. 비정규직을 더 보호하거나 정규직 과보호를 줄이는 내용이 섞여 있어 전체적으로 근로자에게 유리한지, 기업에 유리한지 판단하기 애매하다. 1년 내내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이유다.

노동계의 실수는 이 논란 속에서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다가 기간제법을 비정규직 양산법이라고 스스로 족쇄를 채운 점이다. 35세 이상 비정규직 근로자가 원하면 계약기간을 2년 연장할 수 있도록 한 대목은 고용의 안정성을 높이는 취지가 강하다. 현 정부와 가깝지 않은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 “비정규직 보호 측면에서 의미가 크다”고 평가할 정도였다. 친(親)노동적인 카드를 박 대통령이 노동계 반대로 포기한다고 했으니 한국노총으로선 운신의 폭이 좁아졌다.

드라마틱한 대목은 정부가 이런 상황 전개를 예측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새누리당 최경환 의원은 경제부총리 재직 당시인 지난해 여름 사석에서 이렇게 말했다.

“꼭 관철해야 하는 목표는 2가지입니다. 첫째 호봉제 중심의 임금구조를 성과급체계로 바꾸고, 둘째 강성노조가 있는 현실에서 파견을 통한 대체근로를 자유롭게 해줘서 기업이 노조에 대항력을 갖추도록 해줘야 합니다.”

여러 버전의 노동개혁 과제가 돌아다녀 헷갈렸지만 박 대통령이나 최 의원의 당초 목표는 ‘기업 부담을 줄여서 경쟁력을 높이고, 그 결과 기업이 정규직을 많이 뽑도록 하자’였다.

협상 테이블이 깨진 것은 노사정 어느 쪽도 ‘상거래에서 주는 쪽(기업)은 시장환경에 연동하는 방식으로 변동급여를 지불하려 하는 반면 받는 쪽(근로자)은 고정급으로 받으려 한다’는 불변의 원리를 외면했기 때문이다.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다 전략 부재, 명분 실종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노동계가 먼저 넘어진 꼴이다.

노정(勞政) 대립과 별개로 기업은 먼저 변하고 있다. 삼성전자에서 올해 45세가 되는 직원들은 삼성 인재개발원이 주관하는 ‘경력 관리 및 노후 대비 교육’을 받는다. 삼성도 평생 직장이 아니니 준비하라는 메시지다. 중견기업들 중에는 임금피크제 도입 준비를 끝낸 곳이 많다. 노동법은 30년 전 그대로지만 민간은 고용과 해고가 자유로운 세상의 흐름을 읽어냈다. 정부가 독자적으로 노동개혁에 드라이브를 걸어본들, 제도가 민간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뒷북치기일 뿐이다.


한파에 반팔 옷 걸친 근로자

근로자만 한파에 반팔 옷차림으로 내몰린 격이다. 정부 시나리오대로라면 당분간 한국에서 정규직은 개혁의 집중 타깃이 될 것이다. ‘사오정 대비 교육’이 필요하다. ‘45세 정년’이 아니라 ‘45세면 직장 경력의 정점’으로 보고 그 후를 관리해야 한다. 최근 만난 재계 인사의 말에 힌트가 있다. “저성과자 해고지침이 도입될 때 사장들이 기대하는 것은 ‘직원 100명 중 저성과자 1명을 해고하는 권한’이 아니라 ‘나머지 99명이 전보다 긴장하며 일하는 기강’이다.”

홍수용 논설위원 leg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