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혜란 무엇인가 : 『지낭(智囊)』편 9회
◆1◆
양수(楊修)가 승상 조조의 문서를 관장하는 주부(主簿)로 있을 때의 일이다. 한번은 승상부의 문을 새로 세우면서 문틀을 이제 막 짰는데 조조가 직접 나와 보더니 문틀 위에 ‘활(活)’이라는 글자를 써놓고 떠났다. 양수는 그것을 보고 곧 사람을 불러 문틀을 부수게 하며 말했다. “문 가운데 ‘활’ 자가 있으니 ‘넓다(闊)’라는 뜻이 아니냐. 승상께서는 문이 넓은 것이 마음에 들지 않으시는 게다.”
◆2◆
◆3◆
조조가 한번은 동한 시기에 효행으로 이름 높았던 조아(曹娥)의 기념비 앞을 지날 때 양수가 그 뒤를 따랐다. 비석 뒷면에 ‘황견유부외손제구(黃絹幼婦外孫齑臼)’라는 여덟 글자가 쓰여 있었다.
조조가 양수에게 말했다. “무슨 뜻인지 알겠느냐?” 양수가 대답했다. “알 것 같습니다.” 조조가 말했다. “아직 답을 말하지 말라. 나도 생각을 해보겠다.”
30리를 가서야 조조가 말했다. “나도 답을 얻었노라.” 그러면서 양수에게 그가 알아낸 답을 적으라고 했다. 양수가 설명했다.
조조 또한 따로 그 답을 적었는데 양수와 같았다. 조조는 이를 보고 “내 재주가 그대와 30리 차이가 나는구나”라고 탄식했다.
◆4◆
조조가 한중을 평정하고 유비를 토벌하고자 했지만 공략할 수 없었고 자리를 지키고자 했지만 공을 거두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군사를 통솔하는 호군(護軍)이 조조에게 전진할 것인지 후퇴할 것인지 명령을 내려달라고 청하자 조조는 그저 “계륵(鷄肋)”이라고만 했다. 밖에서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 당황하고 있는데 양수가 말했다.
“닭의 갈비라는 것은 먹자니 별로 먹을 것이 없고 버리자니 또 아까운 것이오. 승상께서는 아마 퇴군하실 것이외다.” 양수는 군영으로 돌아가 짐을 꾸리겠다고 말했다. 조금 뒤에 조조가 과연 퇴군 명령을 내렸다.
양수는 총명함을 지나치게 드러내 조조가 그를 꺼리게 되었다. 그러니 화를 면할 수 있었겠는가?
진(晉) 왕조와 남조(南朝)의 송(宋)에서도 군주들이 신하와 시를 쓰는 재능이나 글자 풀이 재주를 다투곤 했다. 그래서 남조의 시인 포조(鮑照)의 시에는 너절한 구절이 많았고, 승건(僧虔)은 졸렬한 글을 지어 화를 면할 수 있었다.
풍몽룡 지음|문이원 옮김|정재서 감수|동아일보사
※ 인문플러스 동양고전100선 네이버카페(http://cafe.naver.com/booklat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