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레버넌트’의 한 장면.
최근 종영된 케이블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여주인공 덕선(혜리)을 남몰래 사랑하는 이웃 청년 정환을 연기한 배우 류준열을 두고 누리꾼들은 이런 표현을 쓴다. 원빈 조인성처럼 자타 공인 미남은 아니지만 남자답고 속정 깊게 일편단심을 멈추지 않는 극중 정환을 얼마나 절실하게 연기해내었던지, 그에게서 ‘잘생긴 남자’의 느낌이 진정으로 묻어난다는 의미에서다. 요즘 웬만한 여자보다 예쁘게 생긴 남자배우들이 차고 넘치다 보니 이제 여성들은 ‘잘생긴’ 남자배우보단 ‘잘생김을 연기하는’ 남자배우를 더 신선하게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런 맥락에서라면, 리어나도 디캐프리오(42)는 ‘못생김’을 연기하는 배우다. 얼마 전 국내 개봉한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이하 레버넌트)에 나오는 디캐프리오를 보면 장동건 얼굴이 유해진으로 보이는 것만 같은 기묘한 경험을 하게 된다. 여기서 그는 미국 서부개척시대, 인디언 아내와의 사이에 낳은 아들을 무참히 죽인 원수에게 복수하기 위해 세상 끝까지 쫓아가는 아버지를 연기하는데, 가관도 그런 가관이 없다. 불곰의 습격을 받아 다리가 조각나고 온몸이 찢어지는데도, 디캐프리오는 영화에서 두 시간 가깝게 온몸을 혹한 속에 질질 끌고 다닌다. 곰의 공격으로 목에 구멍이 뻥 뚫리자 구멍에 화약을 들이붓고 불을 붙이는가 하면, 죽은 말의 내장을 긁어내고 그 안에 알몸으로 들어가 눈보라를 이겨낸다. 땟국물과 고통으로 가득한 그의 얼굴은 미남자는커녕 오로지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한 마리 들짐승을 목격하는 것만 같다. ‘로미오와 줄리엣’(1996년), ‘타이타닉’(1997년)의 그 ‘꽃미남’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디캐프리오는 조금 더 나아간다.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그는 주로 심리적으로 불안정하거나 억압된 인물을 연기하면서 잘생김을 극복하려는 시도를 해왔다. 장르 영화의 대명사인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과 함께한 ‘캐치 미 이프 유 캔’(2002년) 이후 디캐프리오는 ‘갱스 오브 뉴욕’(2002년), ‘인셉션’(2010년), ‘제이. 에드가’(2011년),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2013년) 등에서 딱 떨어지는 장르적 ‘꽃미남’을 거부한 채 탐욕이든 섹스든 자아든, 심지어 정의든 뭔가에 치명적으로 중독된 채 스스로 영혼을 잠식해가는 맥베스적 인물에다 자신을 던지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그가 가장 많은 영화작업을 한 감독이 무려 다섯 작품을 함께한 이탈리아계 마틴 스코세이지란 사실도 흥미롭다. 스코세이지의 작품을 보수적인 미국 영화 아카데미 회원들이 좋아할 리 없지만, 디캐프리오는 자신의 매우 주류적인 이미지를 비주류적인 예술비전 속으로 용감하고 흔쾌하게 투척해버리는 것이다. 디캐프리오의 연기 중 역대 최고 ‘개고생’으로 평가되는 ‘레버넌트’도 깊고 지루한 영화를 만들기로 소문난 멕시코계 감독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의 작품이 아닌가 말이다.
이런 뜻에서 내가 요즘 주목하는 배우가 강동원(35)이다. 보통 이 정도로 잘생기고 연기 되는 남자배우라면 ‘원톱’을 고집하면서 여심을 쏙쏙 훔치려들 터인데, 이상하게도 이 배우는 ‘군도: 민란의 시대’(2014년), ‘검은 사제들’(2015년) 같은 출연작을 통해 송강호 하정우 김윤석 같은 ‘연기지존’들과의 건곤일척 승부를 스스로 즐기는 선택을 하기 때문이다. 곧 개봉할 ‘검사외전’도 황정민과 연기의 일합을 겨루는 영화가 아니던가.
야리야리한 외모 안에 숨은 ‘상남자’의 기백, 혹은 파이터의 영혼. 이것이 강동원이 가진 매력의 실체가 아닐까. 그는 이런 도전과 승부수를 통해 자신의 잘생김과 주류적 이미지를 극복하면서 뭔가 쓸쓸하고 비주류적으로 보이는 데 성공하고 있다고 나는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고독하고 치열한 행보를 보여 온 그가 최근 YG엔터테인먼트라는 가장 주류적인 기획사행을 선택한 것은 나 같은 팬의 입장에선 자못 실망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