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택균 기자
얼핏 봐서는 문화계 최근 이슈에 발 빠른 대응을 보인 모양새다. 연초 가짜 감정서가 붙은 이우환 화백 그림이 국내 메이저 경매에서 거래됐다는 의혹이 제기된 후 미술계는 “그나마 유일한 작품 진위 판단의 참고 자료인 감정서까지 신뢰하기 어려운 지경이 됐다”는 자괴에 휩싸였다.
미술품 위작 의혹에 대한 취재는 늘 하나의 결론에 닿았다. 작가의 모든 작품 이미지를 제작과 유통, 품질 데이터와 함께 수록한 감정과 매매의 기본 참고 자료인 전작 도록부터 마련해야 한다는 것.
미술시장은 소수의 큰손 컬렉터가 주도하는 ‘그들만의 리그’다. 이번 위작 경매 의혹 기사에 가장 많이 달린 독자 댓글은 “도대체 어떤 사람이 그림 한 점을 5억 원 주고 사느냐”는 내용이었다. 수십 또는 수백만 원의 소품을 주로 거래하는 인터넷 경매 사용자 수가 몇 년 새 몰라보게 늘었지만 시장의 폐쇄성이 완화됐다고 하기는 어렵다.
상품에 대한 정보가 불공평하게 배분된 시장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늘 피해를 입는 건 다수의 소액 구매자다. 주식시장이 삐끗할라치면 매번 ‘개미투자자들 울상’ 얘기가 나온다. ‘큰손들 울상’이란 말은 낯설다. 다수의 소액 고객을 한창 끌어 모으고 있는 미술시장의 정보 편중은 증시보다 심각하다.
전작 도록이 만병통치약일 리는 없다. 하지만 문체부는 가장 우선적인 대응책이 무엇인지 진작 알고서도 늑장을 부렸다. 한국 미술시장을 믿을 자료 하나 없는 복마전으로 만든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발간 실무를 맡은 예술경영지원센터 담당자는 “거래명세 추적이 얼마나 가능할지, 그 과정에서 어떤 사건이 벌어질지 걱정스럽다”고 했다. 지난한 작업이지만 2014년 발표 직후 시작했다면 지금 어느 정도 진척이 있었을 것이다. 다음 정부 발표는 ‘착수’가 아니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