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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위원회 좌담]30년 전 ‘민주화 열망’ 대변했듯 ‘정치변혁 꿈’ 대변해야

입력 | 2016-01-22 03:00:00

정치변혁을 위한 언론보도




동아일보 독자위원회는 18일 본사 회의실에서 ‘정치 변혁을 위한 언론보도’를 주제로 토론했다. 왼쪽부터 유종헌 미디어연구소장, 강무성 조화순 위원, 이진강 위원장, 신용묵 안민호 박성원 위원.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 20대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이 석 달도 남지 않았다. 역대 최악이라는 평을 듣는 국회를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어떻게 바꾸어야 할까. 동아일보 독자위원회는 18일 ‘정치변혁을 위한 언론보도’를 주제로 토론했다. 》

―정치권 이합집산이 한창입니다. 이번 총선에서는 언론이 어떤 역할에 집중해야 하는지, 어떤 목소리를 중점적으로 전달해야 하는지 좋은 말씀 듣도록 하겠습니다.

이진강 위원장=1995년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이 중국 베이징에서 ‘한국의 정치는 4류, 행정은 3류, 기업은 2류’라고 한 발언이 기억납니다. 그 후 21년이 지났지만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평가는 여전히 낙제점인 것 같습니다. 정치권이 왜 잘못 가고 있는지를 짚어 주면서, 누가 바로잡아야 할 것인가를 올바로 지적하는 것이 언론의 역할일 것입니다.

조화순 위원=누가 개혁의 주체가 되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정치권 내부에서 실마리를 찾기란 어려울 것 같습니다. 결국 유권자의 바른 선택을 통해 정치를 바꿀 수 있도록 만드는 게 언론의 역할이겠죠. 후보자 합동연설회 등이 폐지되면서 미디어가 갖는 파급력은 더 커진 것 같습니다. 그에 비해 과연 그동안 언론이 바른 선택을 이끄는 보도 형태를 보였는가 하는 것에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습니다.

신용묵 위원=소비자 수준이 높아지면 제품 품질이 좋아지듯, 소비자(유권자)의 안목만큼 정책의 품질도 높아져야 하는데 참 미흡해 보입니다. 유권자 입장에서는 삶이 안전하고, 행복해야 합니다. 정치하는 분들도 국민의 행복을 위해 일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안전과 행복을 위해 구체적으로 무얼 하고 있고, 무엇을 할 것이냐를 정책으로 제시해야 한다는 거죠. 언론도 그런 쪽으로 물길을 잡아야 합니다.

안민호 위원=하지만 길게 볼 때 우리 정치도 발전한 부분이 전혀 없지는 않습니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선거인데, 우리 선거를 보면, 다른 나라에 비해 덜 민주적이라고 보진 않습니다. 그럼에도 현대사회에서는 정치의 역할이나 영역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미국 유럽 일본에서도 정치의 영향력이 과거 같지 않아요.

강무성 위원=정치권과 시민들이 ‘정치’를 바라보는 시각에는 온도 차가 큰 것 같습니다. 시민들은 정치권이 맨날 싸움질만 한다고 생각하는 반면, 정치인들은 자신들이 나라를 관리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친박, 비박, 친노, 비노, 이런 단어들이 횡행하지만 국민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는 거죠.

이 위원장=다양한 시각으로 문제점을 지적해 주셨습니다. 그러면 이게 제도의 문제인지, 사람의 문제인지, 한쪽으로만 따질 수는 없을 것 같은데 어떻게 보십니까.

박성원 위원=국민은 국회가 입법을 통한 문제 해결 능력을 상실했다고 느끼고, 그런 점에서 정치를 불신하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입법 능력을 상실한 현상과 그 이유를 정밀하게 취재해서 중요한 이슈로 끌어올려 논쟁의 장을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막연히 ‘국회가 문제다’라는 것이 아니라, 어느 당, 어느 의원이 문제라는 걸 구체적으로 적시해 심판의 도마에 오르게 만드는 것도 언론이 해야 할 역할입니다.

조 위원=지역감정에 기반을 둔 선거 구도가 깨지지 않으면 유권자 중심의 의제가 설정되는 선거를 기대하는 건 어렵습니다. 전에는 신뢰할 수 있는 언론과 그렇지 않은 언론의 구분이 가능했는데 어느 시점부터 희미해지다 보니, 심층 분석보다 흥미 위주의 경마식 보도가 많아진 것 같습니다. 언론의 반성도 필요합니다.

신 위원=유권자들은 내 삶과 관련한 정책들을 어느 정당에서 제대로 설계하고 있는지, 어떤 전문성이 있는지, 다른 목소리들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등을 알고 싶을 겁니다. 정치변혁을 기대하는 국민이나 독자들은 실제적으로 그런 기사들을 원하지 않겠습니까.

이 위원장=공감 가는 대목입니다. 언론들이 과거 1970, 80년대에 민주화 열망을 대변한 것처럼 지금의 정치 상황에 대해서도 거센 변혁의 열망을 열심히 대변해야 합니다. 나라와 인간의 근본이 되는 예(禮) 의(義) 염(廉) 치(恥)의 덕목을 갖춘 후보를 유권자들이 잘 보고 뽑을 수 있도록 언론이 더 용기를 내야 한다고 봅니다.

안 위원=최근 선거에서는 특히 여론조사가 중요해졌습니다. 하지만 일부 조사를 보면 신뢰성에 의문이 많이 가는 사례도 발견됩니다. 여론조사 보도는 엄격히 다뤄야 합니다. 좋은 보도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못된 보도를 안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조 위원=선거 보도의 초점을 판세나 대결 구도에서 유권자 중심으로 옮겨 유권자들이 어떤 변화를 원하는지 심층보도를 많이 해주면 좋겠어요. 무관심한 것 같아도 유권자들은 누리과정, 보육 문제 등 삶과 밀접한 이슈에는 관심을 가지거든요. 계파, 파벌 중심의 선거가 아니라 정책과 이슈가 중심이 돼야 정치가 발전할 것이라고 봅니다.

강 위원=중요한 이슈이지만 세부 내용이 어렵고 딱딱해 기사화하기가 어려운 경우도 있다는 얘기도 있었습니다만 출판계에서는 이런 일도 있어요. ‘원소 주기율표’ 같은 골치 아프고 관심이 안 가는 소재로 재밌는 소설을 써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독자와 어려운 이슈 사이의 거리를 메워 주는 작가의 전문성이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기자들도 전문성을 갖추면, 눈길 끄는 심층보도가 많이 나올 수 있다고 봅니다.

안 위원=기자가 이야기처럼 재밌게 풀어 쓰는 내러티브 기사도 있지 않습니까. 심층적이면서도 독자의 관심을 끄는 방법을 연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신 위원=일반 상품에 대한 ‘소비자 불만 제로’ 같은 프로그램이 있듯이 정치변혁을 위한 ‘정책 불만 제로’ 같은 것도 만들어 보면 어떨까요.

이 위원장=말씀대로 심층보도를 통해 국민이 건전한 정치의식을 갖는 건 중요합니다. 선거란 이해가 대립되는 지점이 있는 만큼, 자칫 편파 논란이 불거질 수도 있을 텐데, 이를 잘 극복하면서 심층 분석도 할 수 있는 방안을 찾으면 좋겠습니다.

박 위원=편파 보도 논란에 휩싸이지 않기 위해 양쪽 주장을 나열만 하는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기자가 전문성을 가지고 사안의 본질에 근접해 바라볼 수 있도록 양보다는 질적으로 선택과 집중을 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강 위원=공정을 표방한 편파가 가장 불공정하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서 언론 매체가 지지 후보를 선언하는 것처럼, 차라리 매체가 노선을 밝히면 비록 편파적으로 보일지언정 그게 더 공정한 보도라는 역설이 발생하는 거지요.

조 위원=요즘같이 선거를 앞둔 시기에는 각종 보도자료가 쏟아져 나와 지면 제작에 어려움이 많을 것 같은데, 옥석을 가리는 검증 시스템을 잘 가동시켜야 할 것으로 봅니다.

박 위원=정보 검증은 사내에도 시스템이 있지만, 외부 전문가 그룹 등에 자문해서 거르기도 합니다.

안 위원=공평하게 한다고 기계적 중립을 지키는 건 언론의 의무와도 배치되는 일로 보입니다. 더 나은 정치를 위해 누가 더 좋은 후보라는 걸 독자들에게 전해줘야 합니다.

이 위원장=정치 변혁을 위한 여러 제언은 전체 언론사가 공감대를 형성해 함께 실천해 나갈 때 가능하지 않나 싶습니다.

―오늘 말씀하신 여러 제안에 많은 언론이 공감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이 위원장=
오늘 토의한 정치변혁을 위한 제안이 공감을 얻어 교착 상태인 선거구 획정 문제, 핵심 쟁점 법안 등이 풀리고 19대 국회가 잘 마무리됐으면 합니다. 아울러 20대 국회는 이전과 달리 국민의 박수를 많이 받는 국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정리=김동원 기자 daviskim@donga.com·안나 인턴기자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