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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이광형]경제위기 미국탓·중국탓 그만 하라

입력 | 2016-01-22 03:00:00

獨침공 5일 후 항복한 프랑스… 리더십 없으면 병력도 소용없다
외환위기 때 생각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ICT 인프라에 주력산업 융합하면 먹거리 무진장
자신감 모아줄 리더십 어디 있나




이광형 객원논설위원·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장

1940년 5월 15일 아침 영국의 처칠 총리는 연합국인 프랑스 레노 총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우리는 완전히 패했습니다.” 독일이 침공한 지 닷새 만의 일이었다. 황급히 파리로 날아간 처칠이 프랑스 총사령관 가믈랭에게 반격 계획을 물었다. “수적으로 열세이고 장비도 열세인데, 연합군의 지원도 부족하여 반격할 수 없다”는 답이 왔다. 패배의 가장 큰 원인은 리더십 결여에 있었다. 후방에 100만 명의 병력이 남아 있는데도 불구하고 패배주의에 빠진 정부 각료들은 독일에 항복할 것을 결정했다.

새해를 맞이한 대한민국에도 어두운 그림자가 곳곳에 깔리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지난해 성장률이 3% 이하로 추정되고 있으며 금년에도 크게 달라질 것이란 예상은 나오지 않고 있다. 수출액은 전년 대비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으며, 이것 역시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저출산 고령화시대의 도래, 저성장시대의 진입 같은 어두운 단어들이 스멀스멀 밀려오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에 대한 많은 전문가들의 분석은 거의 비슷하다. 중국의 성장 둔화와 함께 세계적인 저유가와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인해 저성장은 세계적인 추세라는 것이다. 당연히 중국 경기가 둔화하면 우리의 수출이 줄어들 수 있다. 유가가 하락해 산유국들의 재정이 어려워져서 우리 상품 수출이 지장을 받고 있다. 그리고 미국의 금리가 인상되면 국내의 달러가 빠져나갈 가능성이 있다. 모두가 문제의 원인을 외부로 돌리는 말들이다. 2차대전 초기 프랑스가 떠오르는 이유다.

그러면 바꾸어 생각해 보자. 중국의 경기가 좋아지고 유가가 오르고 미국 금리가 오르지 않으면 한국 경제가 다시 좋아질 것인가? 여전히 긍정적인 답은 나오지 않는다. 결국 현 위기의 참원인은 앞서 거론한 것들이 아닐 수 있다는 말이다.

나는 한국의 문제는 수출 부진에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일부 주력 산업의 제품 경쟁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수출 중심 국가에서 수출이 잘 안되니 국가 경제가 좋지 않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조짐이 좋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자 이를 세계적인 뉴노멀이라는 말로 단정하고, 이것을 타개하려는 노력보다 이에 적응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저성장시대가 되어서 수출이 안 되는 것이 아니라 수출이 안 되니 저성장이 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아직도 남은 저력이 많이 있다. 아직 세계인들이 부러워하는 정보통신기술(ICT) 인프라가 있다. 세계 최고 수준에 가 있는 반도체 휴대전화 자동차 조선 제철 산업 등이 버티고 있다. 이 주력산업들이 정보통신과 결합하면 새로운 혁신을 이루어 제품의 경쟁력을 올릴 수 있다. 최근에는 제약과 화장품 산업이 새로운 희망을 주고 있다. 일부에서 고령화 현상을 걱정하고 있지만 아직 본격적으로 고령화 효과가 나타난 것도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자율주행자동차, 전기자동차, 드론, 핀테크, 헬스케어, 빅데이터 등 판을 바꾸는 새로운 기술들이 나오고 있다. 집중 투자하고 육성하면 충분히 새로운 먹거리 산업이 될 수 있는 것들이다.

2008년 금융위기가 터졌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국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지금 미국은 첨단산업을 무기로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다. 미국은 작년에 이어 금년에도 2%대 후반의 성장을 기록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추진한 제조업 혁신과 셰일가스 개발이 시너지를 내고 있는 것이다. 정보통신기술과 제조업이 결합하여 혁신을 이루고, 이것이 제품의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외국에 나가 있던 공장들이 돌아와 일자리를 만들며 활기를 되찾고 있다. 세계 모든 나라들이 저성장의 늪으로 들어갔다고 말하고 있으나 미국은 호황을 구가하고 있다.

기울어 가는 나라라는 조롱 속에 미국을 다시 일으킨 것은 강력한 리더십과 국민의 자신감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국가자원을 한 곳으로 모으는 리더십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외환위기 때를 생각하면 지금은 아무것도 아니다. 경계해야 할 대상은 외부 탓만 하는 패배주의다. 유럽 중국 미국발(發) 악재를 들먹이며 그럴듯한 담론을 펼쳐봤자 우리의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 시간에 어떤 기술을 개발하고 어떤 제도를 고칠 것인지 논의하고, 벤처기업 하나라도 도와주는 것이 우리의 미래를 바꾼다.

이광형 객원논설위원·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