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제재 풀린 이란을 가다]
히잡을 반쯤 걸친 채 머리카락 대부분을 내놓은 이란 여성들이 21일 수도 테헤란 중심부 발리아스르 거리를 걷고 있다(왼쪽 사진). 테헤란 최대 쇼핑몰에서 성업 중인 ‘SFC’ 매장은 치킨 전문 패스트푸드점인 미국 ‘KFC’를 본뜬 짝퉁이다. 테헤란=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테헤란=전승훈 특파원
한 젊은 여성에게 “요즘엔 히잡 단속이 심하지 않으냐”고 묻자 그녀는 “잡혀가도 한두 시간이면 풀려 나온다”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옆에 있던 남자 친구 아미르 씨(26)는 “색깔 히잡이 아니라 보라, 노랑, 분홍 빛깔로 머리를 염색한 여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느냐”며 “이슬람 국가지만 이란 여성들은 매우 다르다”고 말했다. 이어 “요즘 이란의 젊은 여성들은 스키도 승마도 자유롭게 즐길 뿐 아니라 밤에 고속도로에서 남자들과 카레이싱을 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기자가 이란을 처음 방문했던 1990년대 후반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당시는 여성들이 히잡을 쓰고 앞머리를 내놓거나, 귀를 보이기만 해도 종교경찰이 심하게 단속했다. 레스토랑이나 카페에서 젊은 남녀가 한자리에 앉아 있으면 종교경찰이 다가와 “결혼한 사이인가”라고 묻고 아니면 풍속사범으로 잡아가곤 했다.
SFC에서 만난 마시 씨(24·여·디지털광고 디자인 회사)는 “앞으로 프랑스, 독일, 러시아, 중국, 한국에서 많은 투자가 들어오면 젊은이들을 위한 일자리도 많아질 것”이라며 “맥도널드, KFC, 스타벅스 등 서구의 ‘오리지널’ 브랜드도 직접 들어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타렉 씨(37·무역업)는 “아프가니스탄은 이란보다 10배나 못살았는데 전쟁으로 미국이 들어온 뒤 이란과 비슷한 수준으로 발전하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인근 재래시장에서 만난 보수적인 사람들은 미국 문화가 침투하고 개방 바람이 거세질까 우려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수염을 기르고 히잡을 깊게 눌러쓴 부인과 쇼핑몰에 나온 알리 씨(60)는 “핵무기 개발을 포기해 미국과 자존심을 건 싸움에서 졌다”며 “경제 제재가 해제돼도 우리의 종교와 정치 체제를 위협하는 미국인들과 미국 문화는 절대 들어와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란인들의 종교와 체제를 수호하는 강경보수파 ‘혁명수비대’와 ‘바시즈 민병대’의 역할에 대해서도 논쟁이 한창이었다. 바히드 아마디 씨(25)는 “이란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느냐”며 “혁명수비대 등의 확실한 통제 덕분에 이란이 안전한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요세프 이룬파리 씨(32)는 “전임 대통령이 아마디네자드 정권 시절 혁명수비대에 국가의 이권 사업을 대거 넘겨 ‘이란판 올리가르히(러시아 신흥 재벌)’라는 말이 생겼다”며 “요즘 혁명수비대는 히잡 단속보다 돈벌이에 더 관심이 많다”고 비아냥댔다.
현지 TV들은 22일 이란을 방문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도했다. 그랜드 바자르에서 신발 수입 사업을 하는 유수프 씨(60)는 “중국은 서방의 경제 제재하에서도 유일하게 이란의 원유를 사줬다”며 “미국의 제재하에서도 버틸 수 있게 해준 은인 국가”라고 말했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화폐 가치 하락으로 물가가 치솟자 정부는 중국의 싼 물건을 대량 수입해 서민들의 불만을 잠재우려 했다”며 “이제 젊은이들은 싸구려 ‘짝퉁’보다는 질 좋은 ‘오리지널’을 원한다”고 말했다.
그는 전날 이집트 카이로의 아랍연맹 연설에서 중국이 앞으로 중동 평화와 안정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테헤란=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