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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박재완]막힌 정국 뚫는 ‘높은 길’

입력 | 2016-01-23 03:00:00

靑 뜻도 중요하지만 노동계-야당에도 물러설 여지 줘야
국정해법 찾으려면 功은 상대에게 주고 過는 본인에 돌려야




박재완 성균관대 국정전문대학원장

올해는 병신(丙申)년이다. 병신년 역사에선 기념비적인 위업들을 꽤 찾을 수 있다. 무엇보다 서기 936년 고려는 외세의 도움 없이 후삼국을 통일했다. 여러 갈래로 나뉘었던 한민족과 한반도는 발해 유민까지 흡수한 고려 덕분에 하나로 뭉쳐 오늘의 모습에 이르게 됐다. 그 원동력은 태조 왕건의 포용과 통합의 리더십이었다.

1776년엔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을 펴내 오늘날 인류가 누리는 경제적 풍요의 바탕이 된 시장경제의 이론 틀을 제시했다. 같은 해 미국이 독립하면서 사상 처음 절대군주제에서 벗어난 삼권 분립 국가가 탄생하기도 했다.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라는 선진국 잣대의 두 축이 병신년에 태동한 셈이다.

일일이 열거할 순 없지만, 요컨대 병신년의 상징은 ‘통합’과 ‘위대한 여정의 첫걸음’으로 집약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올해는 온 국민의 마음을 모아 대한민국이 또 한 번 도약하는 원년이 됐으면 좋겠다. 하지만 바람도 무색하게 그렇잖아도 답답하던 정국은 새해 벽두부터 더 꽉 막혀 버렸다.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와 여야 대표의 신년연설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쟁점 법안들은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 한국노총은 어렵사리 이룬 9·15 노사정 합의를 파기하고 노사정위원회 불참을 선언했다.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에도 아랑곳없이 총선이 코앞에 닥친 지금까지도 선거구 획정은 오리무중이다. 누리과정 예산을 둘러싼 샅바 싸움은 ‘치킨게임’으로 치닫고 있다. 야권 재편과 4월 총선의 셈법까지 겹쳐 대치 정국이 쉽사리 풀릴 것 같지 않다. 안타까운 마음에 지난 대국민 담화와 야당 대표 신년연설에 덧칠을 해본다.

“2년 연속 정부 예산을 법정기한에 맞춰 확정해 주신 국회에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올해 주요 정책과 사업을 차질 없이 집행할 수 있게 됐습니다. 기대보다 처리가 지연됐고 내용도 상당히 바뀌긴 했지만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관광진흥법, 공무원연금법 등의 통과도 크게 도움이 됐습니다. 대내외 여건이 어려운 가운데에도 우리 경제가 이만큼 버티는 것은 국회의 지원 때문입니다. 이제 19대 국회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노동개혁법과 기업활력제고법 등도 하루빨리 결론을 내려 주셨으면 합니다. 국회의원 한 분 한 분의 애국심을 믿습니다.”

“지난 3년 동안 대통령께서 열심히 국정을 진두지휘하셨지만 그 성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도 책임을 통감합니다. 정부여당이 요청한 대부분의 민생법안과 예산안은 대승적인 차원에서 협조했습니다만 여전히 일부 쟁점 법안이 계류돼 있어 어깨가 무겁습니다. 남아 있는 경제활성화법안들은 이른 시일 안에 처리하되, 사안이 복잡한 노동개혁법안만큼은 서두르지 않고 차분히 숙의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렇더라도 19대 국회 임기가 끝날 때까지는 밀린 숙제가 마무리되기를 기대합니다.”

“안보는 보수, 민생은 진보를 기조로 삼아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대안 정당, ‘국민의당’이 되겠습니다. 특히 북한인권법과 테러방지법은 서둘러 통과시켜야 합니다. 나아가 ‘식물국회’ 논란을 부른 ‘국회선진화법’ 개정도 전향적으로 검토하겠습니다. 국익이 위헌적인 의정 절차에 발목이 잡혀선 안 됩니다. 야당이 다수당이 되었을 때를 내다봐도 교착 상태의 일상화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 당선인은 “선친이 ‘다른 사람에게도 물러설 여지를 줘라’고 늘 나무랐다”며 반대편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나라를 이끌겠다고 다짐했다. 채우려면 비워야 하고, 키우려면 나눠야 한다. 둘러가는 듯해도 마음 열고(虛心) 귀 기울이는(善聽) ‘높은 길(high road)’이 오히려 지름길이다. ‘식물국회’라고 압박하고 ‘악법 중의 악법’이라고 되받는 일머리는 ‘낮은 길’이다. 공(功)은 상대에게, 과(過)는 자신에게 돌릴수록 지지도는 더 올라가는 법이다.

여권에는 만악(萬惡)의 근원이고, 야당에는 상설 피난처로 전락한 ‘국회선진화법’ 개정도 ‘높은 길’에서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제3지대를 모색하는 ‘국민의당’이 그 물꼬를 터줄 수 있을까.

박재완 성균관대 국정전문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