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 한파 전국이 꽁꽁]
방에서도 점퍼 못 벗어 맹추위가 불어닥친 24일 서울 종로구의 월세 22만 원짜리 쪽방에 사는 박철호(가명) 씨가 TV를 보고 있다. 날씨가 너무 추운 탓에 방 안에서도 점퍼를 입고 있다. 한기재 기자 record@donga.com
최저기온이 영하 18도까지 내려간 24일 아침 서울 종로구의 한 쪽방촌. 약 6.6m²짜리 작은 방에 사는 김인석(가명·79) 씨의 입에서 하얀 입김이 흘러나왔다. 쪽방에는 보일러가 없었다. 온기를 주는 것은 전기장판이 유일하다. 행여 과열로 불이라도 날까 봐 그나마 미지근한 온도로 맞춰 놓았다. 잠자리에 들 때면 내복을 2, 3장씩 껴입고 눈을 감는다. 김 씨는 “작년에는 자선단체에서 담요를 한 장 나눠줬는데 올해는 그마저 없다”며 아쉬워했다.
김 씨는 기초노령연금 대상자로 매달 20만 원을 받는다. 이것만으로는 생활이 어렵다 보니 동묘 앞 벼룩시장에 좌판을 열고 헌 옷가지 등을 팔아 생계를 유지한다. 그는 “하루 종일 좌판을 지키면 2만∼3만 원을 손에 쥐는데 오늘처럼 추운 날엔 그것도 벌기 어렵다”고 말했다.
초강력 한파가 쪽방촌 주민이나 거리 노숙인들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경제활동이 완전히 중단되면서 생계마저 위태로워지고 있다.
서울 종로구의 한 쪽방촌에서 만난 박철호(가명·53) 씨는 지난해 봄 교도소에서 출소했다. 얼마 전까지 공사현장을 다니며 생계를 유지했지만 겨울 들어 일감이 줄어들었다. 최근에는 한파가 닥치면서 이마저도 뚝 끊겼다. 박 씨의 방 안 창문에는 바람을 막아주는 비닐이 붙어 있었다. 그럼에도 입을 열 때면 하얀 입김이 뿜어 나왔다.
박 씨가 덮고 있던 이불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봤다. 바닥은 ‘냉골’이었다. 전기장판 위에만 간신히 온기가 돌 뿐이었다. 박 씨는 “가장 강하게 틀어놓았는데 이 모양이다. 낡은 탓인지 성능이 형편없다”고 말했다.
같은 시간 서울 강북구의 허름한 다세대주택. 혼자 사는 이계영 씨(85·여)도 집 안까지 닥친 한파와 힘겹게 싸우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싸늘한 냉기가 온몸을 감쌌다. 벽에는 외풍을 막기 위한 스티로폼이 덧대어졌고, 유리창에는 시립강북노인종합복지관에서 지원한 이른바 ‘뽁뽁이’(에어캡)가 붙어 있었지만 별 도움이 돼 보이진 않았다.
서울역 노숙인들은 추위를 피해 모두 지하로 모였다. 노숙인에게 잠자리를 제공하는 다시서기센터와 응급대피소에는 지난주부터 최대 수용인원인 150명을 넘는 인원이 몰리고 있다. 성산교회 관계자는 “저녁마다 따뜻한 물을 넣은 페트병 100∼150개를 노숙인에게 나눠주고 있다”며 “신문지로 말아 끌어안고 있으면 체온을 유지할 수 있어 노숙인들이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 정부 지원도 현장에선 ‘미지근’
정부와 각 지방자치단체는 주말에 긴급대책회의를 열고 한파대책종합상황실을 꾸렸다. 취약계층 상황 파악과 함께 긴급 급수지원 등 대책을 마련하고 현장을 찾아다니며 지원활동 중이다. 전명숙 보건복지부 지역복지과 서기관은 “서울 등 수도권의 홀몸노인 등 취약계층이 사는 곳의 난방과 전기 상황을 다 확인했고, 문제 있는 곳은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장의 체감도는 높지 않다. 시설 정비를 마쳤다고 해도 값비싼 난방비를 부담하기가 쉽지 않다. 사회복지사들이 직접 해당 가정을 방문해 점검해야 하지만 인력 부족 등의 이유로 이 역시 어려운 상황이다.
한편 질병관리본부가 전국 응급실 530곳에서 한랭질환 감시체계를 운영한 결과 지난주 초중반인 17∼20일 55명의 한랭질환자가 발생했고 이 중 2명이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1주일 전 7일간(10∼16일)의 24명과 비교하면 2.3배 수준이다.
홍정수 hong@donga.com·박창규·이지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