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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방은커녕 수도 터져도 못고쳐”… 취약층은 한파가 지옥

입력 | 2016-01-25 03:00:00

[최강 한파 전국이 꽁꽁]




방에서도 점퍼 못 벗어 맹추위가 불어닥친 24일 서울 종로구의 월세 22만 원짜리 쪽방에 사는 박철호(가명) 씨가 TV를 보고 있다. 날씨가 너무 추운 탓에 방 안에서도 점퍼를 입고 있다. 한기재 기자 record@donga.com

“담요라도 한 장 더 있으면 좋을 텐데….”

최저기온이 영하 18도까지 내려간 24일 아침 서울 종로구의 한 쪽방촌. 약 6.6m²짜리 작은 방에 사는 김인석(가명·79) 씨의 입에서 하얀 입김이 흘러나왔다. 쪽방에는 보일러가 없었다. 온기를 주는 것은 전기장판이 유일하다. 행여 과열로 불이라도 날까 봐 그나마 미지근한 온도로 맞춰 놓았다. 잠자리에 들 때면 내복을 2, 3장씩 껴입고 눈을 감는다. 김 씨는 “작년에는 자선단체에서 담요를 한 장 나눠줬는데 올해는 그마저 없다”며 아쉬워했다.

김 씨는 기초노령연금 대상자로 매달 20만 원을 받는다. 이것만으로는 생활이 어렵다 보니 동묘 앞 벼룩시장에 좌판을 열고 헌 옷가지 등을 팔아 생계를 유지한다. 그는 “하루 종일 좌판을 지키면 2만∼3만 원을 손에 쥐는데 오늘처럼 추운 날엔 그것도 벌기 어렵다”고 말했다.

○ 한파에 사지(死地) 내몰린 서민들

초강력 한파가 쪽방촌 주민이나 거리 노숙인들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경제활동이 완전히 중단되면서 생계마저 위태로워지고 있다.

서울 종로구의 한 쪽방촌에서 만난 박철호(가명·53) 씨는 지난해 봄 교도소에서 출소했다. 얼마 전까지 공사현장을 다니며 생계를 유지했지만 겨울 들어 일감이 줄어들었다. 최근에는 한파가 닥치면서 이마저도 뚝 끊겼다. 박 씨의 방 안 창문에는 바람을 막아주는 비닐이 붙어 있었다. 그럼에도 입을 열 때면 하얀 입김이 뿜어 나왔다.

박 씨가 덮고 있던 이불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봤다. 바닥은 ‘냉골’이었다. 전기장판 위에만 간신히 온기가 돌 뿐이었다. 박 씨는 “가장 강하게 틀어놓았는데 이 모양이다. 낡은 탓인지 성능이 형편없다”고 말했다.

같은 시간 서울 강북구의 허름한 다세대주택. 혼자 사는 이계영 씨(85·여)도 집 안까지 닥친 한파와 힘겹게 싸우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싸늘한 냉기가 온몸을 감쌌다. 벽에는 외풍을 막기 위한 스티로폼이 덧대어졌고, 유리창에는 시립강북노인종합복지관에서 지원한 이른바 ‘뽁뽁이’(에어캡)가 붙어 있었지만 별 도움이 돼 보이진 않았다.

이 씨는 매달 기초노령연금 20만 원과 작은아들이 보내주는 용돈 20만 원이 수입의 전부다. 절반을 월세로 내면 남는 돈은 고작 20만 원. 한겨울에 집 안을 따뜻하게 덥히려면 도시가스비만 10만 원이 넘게 들다 보니 보일러를 최대한 약하게 돌리고 있다. 고질인 신경계통 질환 치료에 들어가는 약값도 만만찮아 전기장판과 이불 석 장에 의존해 겨울을 나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날 오전엔 수도관마저 얼어버렸다. 이 씨는 “수리 기사를 부르면 5만 원이 든다는데 그 돈이 어디 있느냐”며 애를 태웠다.

서울역 노숙인들은 추위를 피해 모두 지하로 모였다. 노숙인에게 잠자리를 제공하는 다시서기센터와 응급대피소에는 지난주부터 최대 수용인원인 150명을 넘는 인원이 몰리고 있다. 성산교회 관계자는 “저녁마다 따뜻한 물을 넣은 페트병 100∼150개를 노숙인에게 나눠주고 있다”며 “신문지로 말아 끌어안고 있으면 체온을 유지할 수 있어 노숙인들이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 정부 지원도 현장에선 ‘미지근’

정부와 각 지방자치단체는 주말에 긴급대책회의를 열고 한파대책종합상황실을 꾸렸다. 취약계층 상황 파악과 함께 긴급 급수지원 등 대책을 마련하고 현장을 찾아다니며 지원활동 중이다. 전명숙 보건복지부 지역복지과 서기관은 “서울 등 수도권의 홀몸노인 등 취약계층이 사는 곳의 난방과 전기 상황을 다 확인했고, 문제 있는 곳은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장의 체감도는 높지 않다. 시설 정비를 마쳤다고 해도 값비싼 난방비를 부담하기가 쉽지 않다. 사회복지사들이 직접 해당 가정을 방문해 점검해야 하지만 인력 부족 등의 이유로 이 역시 어려운 상황이다.

복지부의 핵심 정책 중 하나인 ‘읍면동의 복지허브화’는 6000명의 복지사가 직접 취약계층을 찾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매서운 한파 앞에서 유명무실해졌다. 김현미 독거노인종합센터 실장은 “주말 내내 민관이 함께 대책을 논의했고 많은 현장을 찾아가려 했지만 여전히 손길이 닿지 않는 사각지대가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밝혔다.

한편 질병관리본부가 전국 응급실 530곳에서 한랭질환 감시체계를 운영한 결과 지난주 초중반인 17∼20일 55명의 한랭질환자가 발생했고 이 중 2명이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1주일 전 7일간(10∼16일)의 24명과 비교하면 2.3배 수준이다.

홍정수 hong@donga.com·박창규·이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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