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석 서울대병원 장기이식센터장
1988년 국내 최초로 간 이식 수술에 참여한 뒤 수많은 간 이식 수술 기록을 세운 서경석 서울대병원 교수는 진료실에서 “환자가 건강하게 회복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라고 말했다. 서울대병원 제공
○ 타이거즈 김응용 감독 닮은 듯
오랜 투병으로 지친 권 씨의 체력도 걱정거리였다. 권 씨는 생후 2개월이었을 때와 네 살이 됐을 때 한 차례씩 배를 열었다. 간에 구멍을 내 담즙을 빼내는 수술이었다. 권 씨에겐 임시변통이었다. 복수가 차올라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는 사이 간경화가 심해졌다. 학교에서도 오전 수업밖에 못 들었다.
“좀 아플 텐데 걱정 말고.” 서 교수가 콧줄을 끼고 수술대에 누운 권 씨에게 짧게 말했다. 권 씨는 오만 가지 걱정이 교차하는 그 순간 서 교수의 무뚝뚝한 듯 군더더기 없는 말투가 당시 프로야구 해태 타이거즈 김응용 감독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 속으로 웃었다. 서 교수는 진료 때도 항상 핵심만 정확하고 간결하게 얘기했다고 한다. 권 씨는 ‘말만 앞서는 의사가 아니구나’라는 생각에 안심이 됐다.
수술 중에 피가 많이 났다. 출혈이 계속돼 수혈량은 몸에 있던 피의 두 배에 달했다. 수술을 중단할 뻔한 순간도 있었다. 서 교수는 권 씨가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왔다’고 회상했다. 오전 9시 시작된 수술은 12시간 만에 끝났다. 진통제에 취해 닷새를 보내고 성탄절이 돼서야 정신을 차린 권 씨 옆에서 서 교수가 권 씨의 부모에게 활짝 웃으며 말했다. “잘됐습니다.”
권 씨는 합병증 없이 회복했고, 1∼3개월에 한 번씩 서 교수를 찾아 진료를 받았다. 서 교수는 자연스럽게 권 씨가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졸업하고, 첫 직장을 구하고, 남편을 만나 결혼하는 과정을 지켜봤다.
○ 새로운 도전, 간 이식 환자의 출산
수술한 지 15년째 되는 해였던 2014년 8월, 권 씨는 서 교수에게 또 한 번 ‘숙제’를 내줬다. 계획에 없던 아기가 들어섰다는 것. 간 이식 환자가 아기를 낳는 사례는 매우 드물다. 간 이식 환자는 장기끼리 거부 반응을 일으키지 않도록 평생 면역억제제를 먹어야 하는데, 일부 성분은 태아에게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1998년 국내 최초 뇌사자 분할 간 이식, 2001년 국내 최초 보조 간 이식, 2007년 세계 최초 복강경 공여자 간 오른쪽 절제, 2008년 국내 최연소(생후 60일) 환자 생체 간 이식…. 수많은 기록을 보유한 서 교수에게도 자신이 수술한 간 이식 환자가 임신한 것은 처음이었다.
결과는 순산이었다. 권 씨는 지금도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 아들을 데리고 종종 서 교수를 찾아 진료를 받는다. 권 씨는 “서 교수는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면서 세심하게 챙겨주는 스타일이라 ‘츤데레’(‘겉으론 무뚝뚝하나 속정이 깊은 사람’을 뜻하는 일본식 신조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며 “병으로 잃을 뻔한 제 생명을 지켜준 제2의 부모님이자 아들을 볼 수 있도록 해준 은인”이라고 말했다.
서경석 서울대병원 교수가 간 이식 수술을 집도하고 있다. 서울대병원 제공
서 교수는 “한국의 간 이식 기술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올라선 것도 큰 자부심이지만 어린 나이에 수술을 받은 환자들이 새 장기를 갖고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볼 때 더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담즙을 소장에 분비하는 통로인 담관이 막히는 희귀 질환이다. 담즙이 간에 차면서 황달과 간경변이 나타나다가 고열 호흡곤란으로 사망에 이를 수 있다. 특히 아기가 생후 3주 이후에도 계속 황달 증세를 보이고 변이 하얗게 나오면 담도폐쇄증을 의심하고 전문의에게 진료를 받아볼 필요가 있다. 현재는 간 이식 기술이 발달해 이론상 100% 완치가 가능하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