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덕 산업부 기자
21일 오후 충청 지역의 한 지방상공회의소 회장 A 씨가 한 말이다. A 씨는 “우리가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직접적인 행동을 할 수는 없지만 (선거를 통해) 분명한 뜻을 전할 것”이라고도 했다.
대한상공회의소 등 38개 경제단체 및 업종별 단체는 18일부터 ‘민생 구하기 입법 촉구 1000만 서명 운동’을 벌이고 있다. 온라인 서명 인원은 엿새째인 23일 오후 11시 20분 20만 명을 넘어섰다. 서명이 쌓이는 속도를 보면 A 씨의 말은 결코 허언이 아닌 듯하다.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지하철역 주변 등에는 지금도 많은 시민단체들이 다양한 주제의 서명 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힘없는 약자들이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려면 다수의 목소리가 갖는 힘에 호소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의 서명 운동도 주로 집권여당이 아닌 야당의 몫이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다소 낯설다.
기업인들이 주체가 된 서명 운동은 그리 많이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제품이나 서비스에 불만을 품은 소비자들이 특정 기업을 불매 운동 타깃으로 삼는 경우는 흔하지만, 기업들이 직접 서명 운동을 주도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특히 이번 입법 촉구 서명 운동은 기업 입장에서 ‘갑 중의 갑’인 국회를 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 놀랍다. 비슷한 예로는 2007년 대한상의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국회 비준을 촉구하는 서명 운동을 벌인 것 정도가 기억에 남을 뿐이다.
기업인들의 용감한(?) 행동에 대한 A 씨의 설명은 이랬다.
이제야 이런 절박함이 전해진 것일까. 정치권의 태도도 조금씩 움직이고 있다. 야당의 입장 선회로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가 25일 전체회의를 열어 기업활력제고특별법(원샷법)을 처리하기로 한 것이다. 서비스산업기본발전법과 노동개혁 법안 통과 등 여전히 갈 길이 멀지만 일단 물꼬를 텄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변화다.
하지만 기업인들도 잊지 말아야 할 게 있다.
서명 운동 열기가 이토록 뜨거운 것은 기꺼이 자신의 이름을 빌려 준 수많은 국민의 참여가 있었기에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국민들은 경제활성화 법안이나 노동개혁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인들의 말대로 삶이 전보다 나아질 거라고 믿고 있다. 다소 시간은 걸리겠지만 기업들이 좋은 일자리도 많이 만들어줄 것으로 기대한다.
만약 이런 약속들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기업들은 “국민을 들러리로 세우기 위해 ‘약자 코스프레’, ‘피해자 코스프레’를 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