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勞 “대기업, 하청 형식 악용” vs 정부 “불법파견 원천봉쇄”

입력 | 2016-01-26 03:00:00

[노동개혁 마지막 쟁점 ‘파견법’]




《 4월 총선을 앞두고 쟁점 법안 협상에 돌입한 여야에 노동개혁 법안은 절대 물러설 수 없는 최후의 승부처다. 박근혜 대통령이 기간제법을 철회하고 남은 4개 법안 중 3개는 사실상 합의가 됐지만 가장 첨예한 파견법 협상은 한 치도 못 나가고 있다. 정부는 고령자, 고소득 전문직, 6개 뿌리산업에 파견을 허용해야 일자리가 늘어난다고 말하지만 야당과 노동계는 질 나쁜 일자리가 늘어난다며 논의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파견법을 해부해 보고 전문가들의 진단을 들어본다. 》

정부 여당이 국회에 제출한 파견법 개정안은 △근로소득 상위 25%(지난해 기준 연봉 5600만 원) 이상 전문직 △6개 뿌리산업(주조, 금형, 용접, 소성가공, 표면처리, 열처리)에 파견을 허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와 함께 55세 이상 고령자는 어느 업종에서든 파견 근로자가 될 수 있도록 했다. 퇴직이 임박한 고령자의 전직이나 재취업을 돕고 뿌리산업 중소기업의 극심한 인력난도 해소해 주자는 취지다.

개정안은 또 파견과 도급의 기준을 법률로 명확히 구분하고, 유·도선 선원, 철도종사자 등 안전·보건 관리 업무에 대한 파견을 금지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 파견과 도급의 구분을 법률로 명확히 해 불법파견을 방지하고 세월호 사건 이후 경각심이 높아진 생명·안전 업무에 대한 정규직 채용을 유도하기 위해서다.

○ 문제는 ‘뿌리산업’ 파견 허용

가장 큰 쟁점은 뿌리산업이다. 야당은 정부안이 자동차 등 제조업 파견 허용의 계기가 될 수 있다며 논의조차 거부하고 있다. 현재 제조업의 ‘직접생산 공정 업무’는 파견이 엄격히 금지돼 있지만, 뿌리산업에 파견을 허용하면 이를 악용할 소지가 높다는 주장이다.

예를 들어 현대자동차 등 몇몇 대기업은 일감 일부를 사내하도급 업체에 하청을 주는 방식으로 사실상 파견근로자를 써 왔다. 법원은 이를 불법파견으로 판단했고, 현대차는 이들을 정규직으로 고용해야 했다. 뿌리산업에 파견이 허용되면 이런 불법파견에 면죄부를 줄 수 있다는 것이 노동계의 우려다. 뿌리산업은 제조업 공정에서 필수이기 때문에 대기업이 뿌리산업 중소기업에 하청을 주는 방식으로 사실상 파견근로자를 쓸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런 가능성 역시 원천 차단할 수 있다고 반박한다. 정부 관계자는 “대기업들의 이런 편법을 금지하는 조항을 파견법에 추가할 수 있고, 당정 간 조율도 됐다”고 말했다.

노동계는 또 개정안이 통과되면 고령자 366만 명, 고소득 전문직 75만 명, 뿌리산업 종사자 42만 명 등 약 483만 명이 고용 불안에 노출된다고 주장한다. 현재의 정규직도 파견직으로 전환되거나 해고될 수 있다는 것이다. 파견과 도급의 구분을 법률로 명확히 하자는 정부안도 불법파견을 합법화할 수 있다며 반대한다.

정부 관계자는 “현재 파견이 허용된 32개 업종 470만 명 중 파견직은 6만3000명 정도”라며 “법 통과 시 새로 허용되는 483만 명 모두 파견으로 전환된다는 주장은 기계적인 합산 논리”라고 반박했다. 또 대법원 판례에 따라 파견, 도급 기준을 명확히 하면 불법파견이 합법화되는 일은 없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 타협안 “상용형 파견 고려해야”

노사정은 9·15 대타협에서도 실태조사와 전문가 의견을 수렴해 논란이 있는 파견법 내용의 대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이에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는 공익 전문가그룹(단장 조준모 성균관대 교수)을 구성해 중재안을 만들었고, 지난해 11월 공개했다.

전문가그룹은 정부안에 원칙적으로 찬성하면서도 뿌리산업은 ‘상용형 파견’ 등 보완장치를 마련한 뒤 허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유럽에서 보편화된 상용형 파견은 파견업체가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고용하고, 수요가 있는 기업에 파견하는 시스템이다. 파견근로자는 파견 계약이 끝나면 업체로 복귀해 휴업수당, 훈련수당을 받으며 훈련을 받다가 요청 기업이 생기면 재차 파견된다. 파견근로자의 고용 안정성과 유연성을 동시에 확보하는 방안이다.

현재 국내 파견제도는 대부분 계약 종료와 동시에 실업자가 되는 ‘모집형 파견’으로 운영되고 있다. 비정규직으로 고용되기 때문에 휴업수당이나 훈련수당은 꿈도 꾸지 못한다. 박지순 고려대 교수(법학)는 “국내 파견 근로자들은 파견 기간에만 근로자 지위를 갖고, 기간이 끝나면 실업자가 돼 직업적 경력이 단절된다”며 “상용형 파견을 통해 이런 점을 보완해줘야 파견근로를 나쁜 일자리로 인식하는 편견도 사라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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