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동용 정치부 차장
더민주당이 올해 4·13 총선 공천 과정에서 정체성을 최우선 조건으로 내세우지 못하리라는 점은 분명하다. 김종인 전 의원을 선거대책위원장으로 ‘모셔오는’ 순간, 정체성과는 결별한 셈이다. 1980년 5월,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내란음모 혐의로 구속되고 광주에서 참극이 벌어지고 있을 때 서강대 교수였던 김 위원장은 신군부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직을 수락했다. 그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안의 국회 통과를 방조했던 새천년민주당 비례대표로 2004년 국회에 또 들어왔다.
김 위원장의 행적에 옳고 그름의 잣대를 들이대려는 건 아니다. 다만 더민주당이 4년 전의 ‘정체성’을 고수하고 있다면 그가 선대위원장직을 수락한 지 2주가 다 돼 가는 지금까지 온전히 자리를 지켰을지 의문이다. 운동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이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 지정곡이 돼야 한다며 3년간 피를 토했던 광주의 모 의원은 아무 말이 없다. 재작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 경력의 이상돈 명예교수를 당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모시고자’ 했을 때 결사반대를 외치며 연판장까지 돌렸던 친노·운동권 의원 54명도 조용하다.
그렇다면 정책 대결만이 남았다. 물론 야권통합 또는 선거연대라는 변수가 있긴 하다. 하지만 그것은 총선 직전에나 성사될 확률이 높다. 그동안이라도 써먹을 수 있는 총선 전략은 좋은 정책을 많이 내놓는 것이 유일하다. 여기에 양당 독점체제 타파를 내세운 국민의당이 정책 위주로 국회에서 캐스팅보트를 쥐겠다고 천명하기까지 했다. 더민주당이 정책 개발을 외면할 수 없는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김 위원장이 선장이 되고, 선원들은 미필적 고의로 이를 묵인하는 묘한 상황이 야권 정치를 업그레이드시킬지 모른다. 김종인의 역설이다.
민동용 정치부 차장 min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