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제재 풀린 이란을 가다]
곳곳에 反美 벽화-현수막 이란 수도 테헤란 도심 광장에 걸려 있는 대형 반미 벽화.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이 남태평양의 이오 섬에서 일본군과 격전 끝에 성조기를 게양하는 순간을 미국의 종군기자 조 로젠탈이 찍은 사진을 패러디했다. 원래 사진과 달리 성조기를 게양하는 미군 발밑에 이란과 팔레스타인 등 이슬람 국가 국민들이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는 모습을 그려 넣었다. 테헤란=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테헤란=전승훈 특파원
최고 명문대로 꼽히는 테헤란대는 2009년 대통령선거 부정 의혹으로 촉발된 대규모 민주화 시위의 진원지다. 이란을 이끌어갈 인재들을 양성하는 곳이지만 2009년 시위 때처럼 정권에 반기(反旗)를 들 수도 있어 지금도 사복을 입은 정보요원들이 캠퍼스 안에서 학생들을 감시한다. 그래서인지 기자가 학생들에게 다가가자 인터뷰를 피하는 눈치였다.
‘감시망의 사각지대’인 카페 안에서 만난 학생들의 발언은 대담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테헤란대 공대에 다닌다는 한 학생(20)은 “정부가 핵개발을 포기한 것은 2009년 ‘녹색혁명’ 시위에서 보여줬던 시민들의 힘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학생은 “최근 이란에서는 8년에 한 번씩 정권이 바뀌고 있다”며 “보수파인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에 대한 불만이 커지자 온건파인 하산 로하니 대통령을 내세운 것”이라고 말했다.
서방의 경제 제재가 풀렸지만 테헤란 시내 곳곳에는 ‘Down with USA(미국을 타도하자)’라는 섬뜩한 구호가 적힌 대형 현수막들이 내걸렸다. 반미 벽화도 그대로였다.
하지만 국민의 70%를 차지하는 30세 미만의 젊은 세대의 생각은 경제·사회적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엄격한 통제에도 불구하고 젊은이들은 집에서 만든 ‘수제(手製) 맥주’를 마시고, 테크노 음악을 들으면서 비밀리에 파티를 즐긴다. 한 학생은 “요즘 이란 젊은이들은 1960, 70년대 미국처럼 젊은 세대 스스로의 힘으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라고 말했다.
통제된 사회 덕분에 테러 걱정이 없다는 점은 아이러니였다. 이란에서는 경찰 외에 이슬람 정권 친위부대인 ‘혁명수비대’(12만 명)와 ‘바시지 민병대’(150만 명) 등 다양한 종류의 비밀 요원들이 곳곳에서 사복을 입고 시민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 중동 국가로서는 드물게 이란에서 대형 자살폭탄 테러나 총기 사건이 발생한 적이 없다. 히잡을 쓴 여성들이 오전 1, 2시까지 시내를 돌아다닌다. 극단주의 테러단체 ‘이슬람국가(IS)’가 발을 못 붙이는 유일한 국가가 이란이다.
정권 유지와 테러 방지 등 다목적 성격을 띤 ‘완벽한’ 치안은 서방 경제 제재 해제 이후 이란으로 몰려드는 외국 기업인이나 관광객들에겐 매력이다. 그러나 이러한 ‘통제사회’엔 명암(明暗)이 있다. 젊은이들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막을 뿐만 아니라 외신기자들이 자유롭게 취재하는 것을 방해한다.
테헤란=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