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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조종엽]“오레미, 가마치는?”

입력 | 2016-01-27 03:00:00


조종엽 문화부 기자

우리말이지만 알아듣는 사람이 휴전선 이남에 얼마나 될까. 북한 문화어(표준어)이며 “올케, 누룽지는?”이라는 뜻이다. 남북 언어의 차이는 아직 일부 어휘뿐이지만 분단이 오래 지속되면 의사소통마저 어려워질지 모른다. 남북 학자들이 통일에 대비해 ‘겨레말큰사전’을 함께 편찬하고 있어 다행이다.

여타 남북 학술문화 교류 사업은 어떨까. 남북역사학자협의회의 개성 만월대 공동 발굴을 제외하면 ‘올 스톱’ 상태다. 북한의 4차 핵실험 등에 따른 남북관계 경색 탓이다.

한국고전번역원은 2014년 10월 북한 사회과학원 산하 민족고전연구소에 1656년 유형원이 편찬한 지리지 ‘동국여지지’의 공동 번역을 제안했다. 지역의 정보와 특색을 다루는 책이기에 함경도지와 평안도지 부분은 북한 학자들이 하는 것이 좋겠다는 취지였다. 남북 공동의 유산인 고전 번역 관련 교류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느낌이 좋았다. 간접 접촉을 통해 고전번역원에서 펴낸 조선 선비의 원예서, 고전 속 동물 이야기책을 북측에 전하자 담당자는 “우리 어린이도 읽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긍정적인 답변도 왔고, 학술회의를 함께 열자는 데도 지난해 9월 동의를 받았다. 예산도 마련했다.

“물 건너 간 거죠….” 25일 수화기 너머 이명학 한국고전번역원장의 한숨이 깊었다. “‘조만간 열자’는 답까지 왔다가 지금은 연락이 끊어졌어요. 북한 당국이 기존에 하던 문화 교류는 계속하지만 신규 사업은 곤란하다는 것 같더라고요.”

‘개성 한옥 보존 사업’도 마찬가지다. 경기문화재단이 2013년 북측에 이 사업을 제안하자 다음 해 북측도 흔쾌히 응했다. 수차례 논의 끝에 ‘공동 학술토론회를 열고, 조사단을 꾸려 현지 조사를 하고, 가치 있는 한옥의 보수 예산을 뽑아보자’는 구체적인 방안을 합의했다. 하지만 남북관계가 경색될 때마다 실제 사업 착수는 번번이 미뤄졌다.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로 인한 긴장이 해소됐던 지난해 9월 북측에 다시 연락을 했지만 아직 답을 받지 못했다. ‘5·24 대북 제재 조치 해제까지는 사업이 안 되는 게 아니냐’는 얘기만 전해졌다.

허물어져 벽돌만 남은 안중근 의사 생가(황해도 신천군 청계동) 공동 복원 사업도 북측에 제안만 했을 뿐 진척이 없다.

남북 학술문화 교류를 안보와 연계하는 것은 북한이나 우리 정부나 마찬가지다. 정부는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북측과의 민간 접촉을 전면 불허하고 있다. ‘잠정’이지만 해제될 기약은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22일 “문화 동질성 회복 차원에서 남북 교류는 하되, 북한 주민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대북 제재는 당연하지만 이로 인해 민족 동질성 회복을 위한 교류까지 중단되는 것은 지나치다. 누군가는 “지금이 어떤 시국인데 팔자 좋게 ‘적국’의 한옥이나 고치고, 공동 번역이나 하느냐”고 할 게다. 그러나 ‘팔자 좋은 일’이기 때문에 계속해도 되는 거다. 꾸준히 해야 성과가 나는 일이다. 상대에게 압박도 되지 않는데 가로막을 필요가 뭐가 있는지 남북한 당국자들에게 묻고 싶다.

조종엽 문화부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