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이태원 살인사건 피의자로 진짜 미국인 패터슨 넘겼으나 한국 검찰은 미국 교포 리 기소 미군 수사 못 믿은 검사의 아집, 19년 동안 사건 표류시켜 패터슨 선고 이틀 앞으로… 지연된 정의 실현되나
송평인 논설위원
1997년 4월 3일 밤 미군 헌병 당직 사관은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이태원의 버거킹 햄버거 가게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했고 범인은 패터슨이라는 제보였다. 미군 범죄수사대(CID)가 수사에 착수했다. 패터슨의 행적을 추적하는 한편 햄버거 가게에 함께 간 친구들로부터 패터슨이 의심 간다는 진술을 받아냈다. 패터슨이 미 8군 영내 배수구에 숨긴 흉기도 포클레인까지 동원해 찾아냈다.
CID가 패터슨을 체포하려 영내 고등학교를 찾았을 때 그는 두 달 전 한 친구를 심하게 때린 일로 무기정학 상태였다. 그는 친구를 때린 사실이 부대에 알려질까 봐 그 친구에게 병원비를 쥐여주며 한국 병원에 가라고 할 정도로 주도면밀했다. 그의 손등엔 갱단 표시 문신도 있었다. CID는 사건 3일 만에 패터슨을 체포하고 서울 용산경찰서에 넘겼다.
패터슨은 여러 차례 진술에서 무의식적으로 진실을 드러냈다. 한 가지만 들자면 패터슨은 “리가 피해자의 오른쪽 목을 3번, 왼쪽 목을 4번, 가슴을 2번 찌르는 것을 목격했다”고 진술했다. 피해자의 상처 부위와 정확히 일치한다. 반면 리는 전혀 상세한 것을 기억하지 못했다. 범죄학자들은 예상치 못한 살인을 보고 놀란 목격자라면 리가 정상이라고 말한다.
우리나라는 수사의 전문성도 없는 검사가 수사를 지휘하는 구조로 돼 있다. 지금 여기서 문제 삼고 싶은 것은 이런 게 아니다. 수사의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순리를 따르면 누구나 도달할 수 있는 결론에 오직 박 검사만 도달하지 못했다. 미국이 한 것은 못 믿겠다는 맹목적인 반감이 아니라면 설명하기 어렵다.
2009년 제작된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은 박 검사를 정의감에 불타 고뇌하면서 진실을 추구하는 검사로 묘사하고 있다. 현실의 박 검사는 1999년 검찰 내부 통신망에 “검찰이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해 공소권이 없다고 했다가 다시 구속영장을 청구한 날 부끄러워 울었다”는 글을 올려 화제가 됐다. 자기가 속한 조직이 한 일이 부끄러워 울 정도라면 자신이 기소한 리가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일에 대해서는 더 부끄러워하며 울었어야 했다. 그는 반성도 없이 이듬해 “동양철학을 공부할 계획”이라며 사표를 냈다. 지금은 변호사로서 채식주의의 전도사가 돼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19일 서울중앙지법 대법정에서 미 국방부 과학수사관리관 데이비드 젤리프 씨의 증언을 들었다. 그는 19년 전 CID 초동수사를 지휘한 수사관이었다. 오후 11시까지 이어진 증언 뒤에 젤리프 씨와 피해자의 어머니가 만났다. 어머니는 “내 아들 죽인 미국 사람은 다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미국에서부터 증언하러 와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젤리프 씨는 “나도 하나뿐인 아들이 당신 아들만 한 나이에 오토바이 사고로 죽어 그 맘을 잘 안다”고 위로했다. 무슨 꿍꿍이는 없다. 이 사건은 미국인이 한국인을 죽인 사건이고 그 미국인은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19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미국의 태도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