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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정성희]저커버그의 옷장

입력 | 2016-01-28 03:00:00


“무엇을 입어야 할까요?”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가 육아휴직을 끝내고 출근하는 날 회색 티셔츠와 진회색 후드 티로 가득한 자신의 옷장을 페이스북을 통해 공개하며 물었다. 저커버그가 티셔츠와 후드 티를 즐겨 입는 것은 잘 알려져 있지만 똑같은 옷이 여러 벌 걸려 있는 모습에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그는 페이스북 사용자와의 응답시간에 “이 공동체를 위한 일 말고는 결정해야 할 일의 가짓수를 줄이고 싶기 때문”에 똑같은 옷을 입는다고 말했다.

▷2011년 세상을 떠난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이세이 미야케의 검은색 터틀넥과 리바이스 청바지, 뉴발란스 운동화가 시그니처 스타일이었다. 잡스는 “날마다 뭘 입을까 걱정할 필요 없고 나만의 스타일을 만들 수 있다”고 이유를 댔다. 1980년대 초 일본 소니사를 방문한 그는 소니 직원들의 유니폼에 감명 받아 애플에도 유니폼을 도입하려 했다. 직원들의 반발에 ‘애플 유니폼’은 포기했지만 그 대신 ‘잡스 유니폼’을 만들었다. 잡스는 자신의 전기 작가에게 “평생 입을 만큼 충분한 터틀넥을 갖고 있다”고 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저커버그와 비슷한 이유로 푸른색 또는 회색 슈트만을 입는다. 그는 2012년 배너티페어지와의 인터뷰에서 “결정하는 일을 줄이려고 노력 중이다. 뭘 먹을까, 뭘 입을까 하는 문제까지 결정하고 싶지 않다. 결정해야 할 너무 많은 사안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최고지도자로서의 스트레스가 느껴지지만 일하는 여성의 옷 스트레스와 비할 수 있을까 싶다. 한국 최초의 패션디자이너 노라노(88)는 그래서 40대부터 검은색만 입는다.

▷너무나 많은 선택지 앞에서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하는 현대인의 병리현상을 결정장애라고 한다. 저커버그의 경우 결정장애라기보다는 의상 선택에 소모되는 시간과 에너지까지 아까워 아예 선택지를 없애버린 것 같다. 바쁜 삶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과감히 없애버리는 집중력이 있었기에 성공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위기에 맞춰 옷을 선택하는 감각도 현대인에게 소중한 자산이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