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년간 고려 문화재로 잘못 알려져 다른 판본에선 발문 떼어내 고려 문화재로 둔갑시킨 의혹
조선 성종때 문신이 1472년 작성 김모 씨 소유의 증도가에 붙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발문 사진. 중국 명나라 연호인 성화 8년(1472년·성종 3년) 김수온이 발문을 썼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붉은 선 안)
문화재청에 따르면 오용섭 문화재위원 등 서지학 및 서예 전문가 7명이 25일 대전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동일 목판에서 찍은 증도가 3점을 비교 조사한 결과 만장일치로 조선시대의 것으로 판정했다. 대상은 보물 제758-1호(삼성출판박물관 소장·1984년 지정), 보물 제758-2호(공인박물관 소장·2012년 지정)와 김모 씨가 지난해 문화재청에 국가문화재 지정을 신청한 증도가다.
전문가들은 획의 굵기와 지질(紙質), 서체 등을 정밀 감정한 결과 보물 제758-1호 증도가는 조선 세종 때, 김 씨 소장본은 성종 때, 보물 제758-2호는 명종 때 인쇄된 것으로 분석했다. 이 목판본들이 조선시대 서책으로 드러난 결정적 근거는 김 씨의 증도가에서 분리된 인수대비 발문이다. 이 발문에는 조선 초기 문신 김수온(金守溫·1409∼1481)이 성종 재위 기간인 1472년 6월에 글을 작성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보물 제758-1호(삼성출판박물관 소장·왼쪽)와 보물 제758-2호(공인박물관 소장) 증도가. 25일 전문가 분석 결과 모두 고려가 아닌 조선시대에 인쇄된 것으로 조사됐다. 문화재청 제공
“보물 ‘증도가’ 2점은 고려 아닌 조선 목판본”… ‘3번째 증도가’ 문화재 신청 과정 확인
보물 제1208-1호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가천박물관 소장)은 1994년 국가문화재 지정 당시 고려시대 목판본으로 위조돼 있었다. 누군가가 책에 적힌 발행 연도를 선덕(宣德·명나라 선종의 연호) 6년(1431년)에서 선광(宣光·원나라 소종의 연호) 6년(1374년)으로 글자 하나를 몰래 고친 것이다. 위조 사실은 동일 목판본이 우연히 발견되면서 드러났다. 춘추좌씨전은 희귀성 때문에 보물 지위를 유지했지만 조선시대 판본으로 문화재 등록정보가 수정됐다. 고려시대 목판본은 수량이 극히 적어 경매시장에서 조선시대 목판본보다 값이 두 배 이상이기 때문에 위조한 것으로 보인다.
1984년과 2012년에 각각 보물로 지정된 증도가(證道歌) 2점 역시 같은 목판에서 찍은 또 따른 증도가(김모 씨 소장)가 새로 공개되면서 고려시대가 아닌 조선시대 목판본으로 밝혀졌다.
총 6쪽인 인수대비 발문은 목판본인 본문과 달리 조선시대 금속활자인 갑인자(甲寅字)로 찍어냈다. 발문은 성종의 어머니인 인수대비가 선왕(세조, 예종)들과 죽은 남편(덕종)의 명복을 빌기 위해 증도가 200부를 간행했다고 밝히고 있다. 문신인 김수온이 성화 8년(1472년·성종 3년) 발문을 썼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김 씨 소장 증도가의 본문과 발문의 왼쪽 상단에는 이전 소유자 이모 씨의 도장이 하나씩 찍혀 있다. 문화재위 관계자는 “도장 모양은 물론이고 책의 여백에 남아있는 얼룩까지 발문과 본문이 서로 일치해 사진이 조작됐을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전문가 전원은 김 씨의 증도가가 1472년에 인쇄된 조선시대 판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김 씨 소장본과 삼성출판박물관 소장본(보물 제758-1호), 공인박물관 소장본(보물 제758-2호)은 모두 같은 목판에서 인쇄됐다. 황정하 청주고인쇄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은 “이들 증도가 목판본은 각 장에 표기한 장인의 이름과 글자의 목리(木理·나뭇결), 칼자국 등이 서로 같다”고 말했다. 증도가 목판본 3점 사이의 선후 관계나 인쇄 시점은 획의 굵기와 글자의 탈락, 필사(筆寫)로 보완한 정도 등을 기준으로 분석됐다. 임인호 금속활자장(중요무형문화재 제101호)은 “목판본은 찍어낼수록 글씨가 닳아서 획이 점점 굵어진다”며 “상대적으로 굵은 획의 목판본은 인쇄 시기가 그만큼 늦은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고려시대 목판본으로 보물이 된 증도가 2개 판본은 조선시대 것으로 수정될 전망이다. 하지만 보물 지위는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문화재위 관계자는 “현존하는 증도가는 김 씨 소장본을 포함해 단 3점뿐이어서 조선시대 판본이라도 문화재로서 가치는 높다”고 설명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